매일신문

[사필귀정]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1916년 7월 초. 프랑스 북부 솜므강에 모인 영국의 젊은이들은 순진하기만 했다. 독일군에 맞서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군 등과 연합한 영국군은 정규군이 아니라 의용군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전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동네의 럭비클럽과 축구클럽 회원들이었고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었다. 전쟁터에 나간다기보다 큰 경기장에 입장하는 선수들과 같은 기분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연합군의 대대적인 포격 후 그들은 경기 전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듯 악수까지 나누며 돌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진격에 나선 영국군은 친구들의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고 나서야 전쟁의 무서움에 몸서리쳤다. 솜므강 전투는 4개월 넘게 이어지며 126만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 1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으로 기록됐다.

지난달 중순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도 솜므강 전투에 나선 군인들처럼 가볍게 시작됐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살벌한 구호를 외치긴 했지만 랩 가수가 분위기를 띄우고 유모차를 몰고 나온 사람들도 있는 등 '시위'라기보다는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시위대들이 99%의 권리를 주장하자 시카고 상품거래소 직원들이 건물 유리창에 '우리가 1%다'는 문구를 내거는 치기 어린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국 금융계의 탐욕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불붙인 시위는 미국 각지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15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시위를 열자는 움직임에 호응해 서울 여의도에서도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시위는 이처럼 가벼운 측면이 있다. 중동의 민주화 시위가 유혈 사태를 빚었지만 중심이 되었던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는 축제와 같은 면이 있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반값 등록금 시위 등도 축제를 즐기듯 진행된 측면이 있다. 월가의 시위대도 이집트의 시위를 모델로 한다며 뚜렷한 주도자 없이 별다른 요구를 내걸지 않고 카니발과 같은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시위의 형태가 가볍다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심각한 문제의식은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미국 금융계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기다 어려울 때는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데 대한 분노가 그것이다. 이들은 또 소수 부자들의 탐욕이 많은 이들을 가난하게 하고 있으며 신분 상승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고 항의한다. 이같이 '계층 전쟁'으로 규정되는 월가 시위가 확산되고 점차 진지해지면서 최근에는 문제의식을 구체화한 요구와 행동 계획들도 나오고 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폐지, 월가 범죄자 기소, 학생 부채 탕감 등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으며 대형 은행 예금계좌 이체 등의 행동 계획도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백만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가난과 부채에 허덕이고 젊은이들은 기를 쓰고 경력을 쌓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금융 종사자들은 수익 잔치를 벌이고 있으며 대기업들은 부의 확장에만 골몰하고 있다. 15일 예정된 여의도 시위에 대해 자발적 시위자들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나서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다고 선을 긋는 시각이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월가 시위에 대해 공정성과 정의가 훼손됨에 따라 나타난 분노의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듯이 시위의 본질을 살필 필요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열리는 시위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세계사적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기도 하다. 1968년 사회 변혁을 외친 프랑스의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68혁명, 민중들의 분노로 일거에 절대왕정 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 등이 비교 대상이다. 처음부터 폭발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축제처럼 시작된 월가 시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겁게 바뀌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월가 시위가 중간에 사그라질지, 혹은 거대한 변혁으로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부의 과도한 집중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분노의 불씨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올 것이 오고야 만 상황인 지금, 체제의 모순점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金知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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