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 영화] EBS 한국영화특선 '하녀' 16일 오후 11시 40분

방직공장의 미남 음악선생 동식(김진규)은 여공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그는 새로 장만한 피아노의 본전을 뽑기 위해 여공들에게 피아노 개인 레슨 부업을 하기로 한다. 동식은 아내(주증녀)가 새집 마련을 위해 무리해서 재봉일을 하느라 건강이 안좋아지자 여공 조경희(엄앵란)에게 부탁해 하녀(이은심)를 소개받는다.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는 경희는 동식의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해 친정에 가 있는 어느 날, 동식에게 연모의 정을 고백하고 동식은 이를 거부하고 가정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평소 2층 자기방 옆방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경희를 질투해오던 하녀는, 동식에게 자기도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경희에게처럼 다정히 대해달라며 비오는 그날 밤 동식을 유혹해 관계를 맺게 된다. 하녀가 임신사실을 동식의 아내에게 알리자, 동식의 아내는 하녀를 계단에서 떨어지게 해 낙태시킨다. 아이를 잃고 난 하녀는 차츰 히스테리컬해지고 동식의 아들 창순(안성기) 또한 하녀로 인해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하녀가 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공장에 알리겠다고 위협하자, 동식의 아내는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하녀의 요구대로 동식을 2층 그녀의 방에서 동침하도록 허락한다. 동식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하녀는 동식과 함께 쥐약이 든 물을 마시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급속한 산업성장과 도시화로 인해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하고 가족제도가 변화하던 시기. 중산층 가정 내부에 존재하는 '불안'은 가정을 위협하는 괴물스러운 타자인 하녀와, 거기에 끌려들어가는 가부장의 파멸로 그려진다. 그로테스크한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하녀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성의 문제가 단순한 쾌락의 문제가 아닌 생존투쟁의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1960년대 사회적 타자였던 하녀는 '계급갈등'과 '젠더'의 변화를 함축하는 상징적 존재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안을 야기하고 이어지는 '여자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마조히즘적 남성상의 시초를 출현한다.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김기영 감독은 이처럼 실화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을 선호했다. 자기만의 주제의식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 같은 김기영식 영화 만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식이 신문기사를 읽는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에필로그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며 여태까지의 내용이 허구였음을 드러내는 '액자식' 봉합 구성은 검열에 대한 의식, 혹은 대중성을 고려한, 관객에 대한 안전장치로 보인다. 러닝타임 108분.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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