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프랑스의 '생얼' 보여준 모리스 파퐁

"10배로 갚아 줘야 한다. 적들을 부숴라. 책임은 내가 진다." 1961년 10월 2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NFL)의 테러로 숨진 한 경찰관의 장례식에서 당시 파리 경찰청장 모리스 파퐁(1910~2007)은 이렇게 지시했다. 그로부터 15일 뒤인 1961년 오늘 파리는 알제리 이민자들의 피로 물들었다. 센강에는 그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 통금조치에 항의하는 알제리인들을 파리 경찰이 학살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신의 귀재였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보르도 지역의 치안책임자로 있으면서 어린이 223명을 포함, 유대인 1천690명을 절멸수용소로 보냈다. 나치의 몰락이 임박하자 레지스탕스로 신분세탁을 했고 이후 예산장관까지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1983년 과거가 탄로난 뒤 1998년 재판에서 '반인도주의 범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가 치른 죗값은 그야말로 '껌값'이었다. 수감된 지 3년 만에 병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프랑스가 알제리인 학살에 대해서는 그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의 악취가 진동하지 않은가. 이것이 '문화국가'로 화장한 프랑스의 역겨운 '생얼'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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