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 캔버스는 내면의 소리를 담는 도구"

10년만에 한국서 전시회 갖는 백경옥씨

캔버스 안에서, 붓은 자유롭다. 붉은, 푸른 원색들이 캔버스 안에서 춤을 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형상 앞에서 잠시 당황스럽다. 하지만 곧 꿈틀대는 기(氣)를 느낄 수 있다.

미국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 백경옥이 10여 년 만에 전시를 연다. 그림 속에서 형상, 또는 의미를 읽어내려 하는 노력은 일찌감치 내려놓는 것이 좋다. 작가의 무의식을 따라 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작가에게 응어리진 상처들이 저절로 그려 놓은 그림이다. 어느덧 빨아들이듯 강한 에너지가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운다.

"이것은 제 내면의 소리예요. 저 깊은 무의식의 바다 속에서 건져낸 이미지들이지요."

작가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 침잠해 있었다. 홍익대 미대 졸업 후 첫 개인전을 미국 뉴욕에서 여는 등 전도양양하던 작가는 덴마크에서 큰불을 만난다. 덴마크의 미술 컬렉터이었던 남편은 그 불에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 그는 머나먼 이국에서 온갖 오해에 시달리며 남편 곁에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다.

그는 오랫동안 가두어놓았던 상처들을 조심스럽게 화폭에 옮기며 치유해 나가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작가의 내면에 숨어 있던 풍경들이다. '그림을 위한 그림', '전시를 위한 그림'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요동치고 있는 이미지들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화폭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요. 이 작품들은 '의도'나 '주제'가 있는 것들이 아니에요. 점 하나로 시작해 붓이 저절로 움직이고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삶이 녹고 부식되어 나온 형태들이라, 꾸밈이 없지요."

미술사조에 갇히지 않고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있는 화가를 발견할 수 있다. 오랜 내면으로의 침잠 끝에 삶의 상처가 불러낸 색과 이미지들이다.

11월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동제미술전시관 10주년 기념전이다. 시여리 동제미술전시관 관장은 "자연 속에서 작품을 보며 편안하게 쉬어가셨으면 하는 뜻으로 10년 전 미술전시관을 개관했다"면서 "이번 개관 10주년 기념전은 북유럽, 덴마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주 에너지와 합일돼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의 탄생과 환희를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053)767-0014.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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