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 히말라야

"매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은 창문을 열어 하늘과 땅 사이에 뿌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지만 나는 잿빛 하늘이 싫어 커튼을 얼른 닫아버리는 습관이 한동안 몸에 배어 있었다."(눈 속에 피는 에델바이스, 박상열, 2000)

1977년 9월 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8,848m)을 불과 48m 남겨 두고 산소가 떨어져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원로 산악인 박상열 전 대구산악연맹회장의 히말라야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그의 한국 산악 사상 첫 에베레스트 등정 꿈은 지금은 고인이 된 동료 산악인 고상돈이 9월 15일 낮 12시 50분 "여기는 정상. 지금 정상에 도착했다"고 무전 연락함으로써 이뤄졌지만 히말라야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려 온다.

고상돈 이후 한국 젊은이들의 눈 덮인 히말라야에 대한 도전은 거셌다. 급기야 한 사람이 14개의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들의 정상을 밟는 14좌(座) 완등 대기록도 달성했다. 첫 완등자 엄홍길의 뒤를 박영석, 한왕용, 여성 산악인 오은선, 김재수가 이어 갔다. 특히 불굴의 의지로 '오뚝이'란 별명을 가진 박영석은 14좌에다 3극점(에베레스트, 남북 극점)에 이어 7대륙 최고봉을 등정,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도 이뤄냈다.

만년설이 있는 곳, 히말라야를 향한 한국 산악 역사에 대구경북 산사나이들의 활약은 컸다. 박 전 회장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아쉬움을 10년 뒤에 풀어준 고향 후배 장병호 현 대구등산학교장이 선두였다. 장 교장은 14좌 중 두 번째 높은 K2(8,611m)도 1986년 첫 등정, 대구 산사나이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그 뒤 많은 대구경북 젊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를 누볐다. 20명 정도는 14좌 중 1, 2군데 이상의 고봉 정상을 밟았다. 1993년엔 대구 여성 산악인 김순주가 동료 2명과 한국 여성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지역 산악인들과 친한 박영석 대장의 이번 안나푸르나 원정대에 참가한 신동민도 있다. 그는 제주서 자랐지만 대구대 산악부를 거쳐 지역 산사람이 됐고, 오랫동안 히말라야와 우정을 쌓았다. 지난 2000년 장 교장이 이끈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말) 원정대에서 필자와 50여 일 고락을 나누기도 했다. 강인한 체력을 가진 그가 강기석 대원, 박영석 대장과 함께 무사히 국민들 품으로 꼭 돌아오리라 믿는다. '대지의 여신'인 초모랑마여, 자비를 베푸소서!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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