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대덕면 봉화산 해발 800m에는 '너드렁 상탕'이라는 옹달샘이 있다. 낙동강 지류인 감천(甘川)의 발원지(發源地)다. 감천은 김천시 중심부를 남서에서 북동쪽으로 꿰뚫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낙동강 중류의 제1 지류이다. 김천시는 지난 1999년 '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김천문화원 중심으로 감천 발원지 찾기에 나서 '너드랑 상탕'을 발원지라고 밝혔다. 우두령 봉화산 계곡이 거리상 가장 위쪽에 위치하고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湧泉水)라고 탐사조사단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시는 이곳에 표지석을 세우고 주변 정비작업을 마친 뒤 그해 11월 30일 첫 '감천발원제'를 올렸다. 이후 매년 11월이면 이곳에서 지역민들의 안녕과 김천의 발전을 기원하는 발원제를 올리고 있다. 올해로 13년째를 맞는다.
◆감천의 지정학적 의미
감천은 김천시와 경남 거창군을 경계로 하는 우두령에서 시작해 구미시 선산읍 남쪽까지 흘러내려 낙동강에 합류한다. 상류에서 감입곡류(嵌入曲流)하다 김천시 북동부에서 개령들을 이루고 낙동강에 합류하는 일대에 비교적 기름진 선산분지를 만들었다.
'너드렁 상탕'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아래쪽 대덕천으로 흘러들고 대덕면 임기리에서 새목골물을, 관기리에서 감호천을 모아 굽이굽이 흐른다. 지례면에 이르러 구남천, 부항천과 합하면서 하천 폭이 넓어지고 구성면에서 무릉천, 하원천과 합류한다. 냇물은 조마면에 이르러 강곡천과 대방천을 보듬어 내려가 김천시 신음동 속구미에서 김천 제2 하천인 직지천과 합쳐진다. 이로부터 수량과 하천 폭이 급격하게 넓어져 내(川)보다는 강(江)의 형태를 띤다.
김천 시가지를 벗어난 감천은 북동쪽으로 흐르면서 농소면 율곡천, 남면의 송곡천, 연봉천과 함께한다. 개령면에서 아천과 감문천을 모아 감문면에 이르러 외현천을 받아 감문면 '배시내'에서 김천을 벗어난다. 구미 무을면에서 대천과 합쳐진 후 선산읍 원동에서 긴 여정 끝에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백두대간 준령 곳곳에서 머금은 냇물을 낙동강으로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감천은 길이가 69㎞(170리), 유역면적은 1만2천213㎢이다. 김천시와 구미시 등 2개 도시에 걸쳐 있고 유역 내에 4만9천여 가구, 17만 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영남의 젖줄이다.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감천
강은 흔히 어머니의 젖가슴에 비유된다. 모든 생명과 문화를 잉태하고 자랄 수 있는 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감천 유역은 이곳에서 신석기'청동기시대 유물이 대량 발굴돼 역사의 보고(寶庫)이자, 불교'유교 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발굴된 송죽리 유적은 감천에서 꽃을 피운 대표적인 선사문화 유적지다. 1990년 구성공단 조성 과정에서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비롯해 빗살무늬토기, 돌촉 등 각종 유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김천의 역사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적지 중심인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은 'U'자 형으로 감아도는 감천의 곡류하천 안쪽 중심부 충적지에 위치하면서 유수량이 풍족한 강과 높은 산이 배후에 입지하고 있다. 선사인(先史人)들이 감천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종을 포획하고 주변 산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하는 등 이곳이 생업에 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기원전'후 원삼국시대에는 감문국과 주조마국 등 소국이 감천 유역에서 성장과 몰락을 거듭했다. 특히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의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했으나 서기 231년 신라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궁궐지로 알려진 '동부연당'과 '금효왕릉'을 비롯해 감문산성 등 수많은 유적들이 비운의 왕국의 안타까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감천과 직지천이 만나는 지점의 모암동 유적지에는 6, 7세기 신라고분군이 대거 분포해 있으며 신라가 감문국을 정벌한 후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했는데, 이는 당시 감천이 갖고 있던 정치'군사적 가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불교와 유교문화 르네상스 이끈 터전
신라 불교의 첫 전파지는 잘 알려진 것처럼 구미 선산 도리사와 김천 직지사이다. 고구려 승려인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구미 해평면의 '모례'라는 사람 집에 숨어 살았다. 마침 신라 왕녀가 병이 난 것을 향을 피워 고쳐 준 것을 인연으로 신라 왕실로부터 포교를 묵인받고 선산에 신라 최초의 사찰인 '태조산 도리사'를 지었다(눌지왕 때인 417년). 직지사는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후 김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만한 훌륭한 터가 있다"고 하여 곧을 직(直)과 손가락 지(指)를 따서 직지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는 신라가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527년(법흥왕 14)보다 110년 앞선 것이다. 신라 천년을 넘어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 불교의 시작점이 바로 감천 유역인 것이다.
감천은 또 많은 선비들을 길러내 조선조의 통치이념인 유학의 중흥기를 마련하는 감로수 같은 역할을 했다. 하류지역에 위치한 선산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말했듯이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 고려 때 안향에 의해 중국의 성리학(주자학)이 보급된 후 유학은 정몽주와 길재를 거쳐 조선에 그 학맥이 이어져 오면서 조선체제 정립에 공헌했는데 그 제자들을 길러낸 곳이 선산이다. 선산을 유교의 본향(本鄕)이라거나 연수(淵藪)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 이유에서다.
길재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낙향해 후학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 생육신인 이맹전을 비롯해 한국 최초의 '농사직설'을 저술한 정초와 영남학맥을 선도한 김숙자'김종직 부자, 김굉필, 박영, 장현광, 구한말 의병 허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곳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희망을 노래하는 감천
170리 굽이굽이 많은 사연을 간직한 감천이 요즘 들어 생채기를 내며 몸살을 앓고 있다. 상류인 부항천에 댐이 들어서고, 골프장에다 혁신도시까지 들어서는 등 강이 크게 변모하고 있다.
감천 상류에는 다목적댐인 부항댐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02년 착공한 부항댐은 내년 말 준공 예정이다. 총 사업비 4천549억원을 들여 높이 64m, 길이 472m인 댐을 만들고 있다. 유역면적이 82㎢로, 총 저수용량이 5천430만t이다. 댐 건설단 측은 저수지 바닥에 수몰되는 자연상태의 모래, 자갈 등을 댐 축조재료로 활용해 주변 환경훼손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댐 수위조절을 위한 방류 때는 동식물 이동 중단으로 인한 생태계 단절을 막기 위해 여수로 좌우안을 연결하는 생태 이동통로를 설치하는 등 국내 대표적인 환경친화적인 댐이라고 건설단은 내세웠다. 특히 저수지 둘레에 10여㎞의 일주도로를 만들고 유촌'부항대교에는 야간 경관조명 설치 등 다양한 시설물을 설치해 비교적 오지인 부항면 일대가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 감천 중류에는 경관이 가장 빼어난 구성면 송죽리에 골프장이 들어선다. 현재 18홀 회원제에다 퍼블릭 6홀 규모의 베네치아 골프장은 내년 상반기 중 오픈 예정으로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골프장은 이 일대가 처음에는 구성공단으로 조성됐으나 공단부지 분양이 원활치 못해 10여 년 동안 방치되다 최근 골프장으로 모습을 바꿔 시민들의 레저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농소'남면 일대에 들어서는 혁신도시인 '경북드림밸리'도 막바지 조성공사를 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등 13개 공공기관이 이곳으로 옮겨온다. 이미 한국도로공사와 우정사업조달사무소가 신청사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중 8개 기관이 사옥 착공에 들어간다. 혁신도시에는 녹색미래과학관'특목고 등 문화'교육'자족 기능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시설들도 들어설 예정이다. 혁신도시는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경제'문화적 파급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감천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김천'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