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인류의 잔혹한 전쟁, 비밀은 남성의 파괴본능

전쟁 호르몬/ 자오신산 지음/ 김정자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인간의 일곱 번째 본능, 즉 (남성호르몬에서 기인한) 파괴본능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인간의 본능(식욕, 성욕, 안정욕, 집단거주욕구, 호기심, 창조욕망) 외에 세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이는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 세계에서는 암컷과 교미를 위해 수컷들이 싸움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싸움에서 사소한 부상은 다반사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싸움에서 진 사자나 원숭이 수컷은 집단에서 쫓겨나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육지 동물뿐만 아니라 바다 동물도 싸움을 일삼는다.

'수소, 수사슴, 수영양에게 뿔이 있는 것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에 특수한 무기를 하나씩 가지는 수컷들은 모두 호전적인 성질을 보인다. 이는 본능적인 행동이며 그 심층적인 생물학적 원인은 남성 호르몬이다. 발톱, 이빨, 뿔은 모두 수컷 동물의 공격 무기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래를 보면 수없이 상처가 나 있는 뿔을 볼 수 있다.'-87쪽-

동물들은 싸움을 통해 암컷을 차지하고, 싸움에서 이긴 수컷의 유전자만 대를 잇는다. 패자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인종 말살이었다. 암컷과 수컷의 교미 과정, 우월한 개체가 열등한 개체를 말살하는 과정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근본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 2006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전쟁은 모두 1만4천500여 회. 인류 역사에서 평화로웠던 기간은 30년에 불과하며, 70억 명 이상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책은 전쟁을 일삼았던 통솔자들을 뇌과학과 분자 생물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남성 호르몬'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남성 호르몬이 왜 생기는지 알아보고, 생물학적 원동력과 전쟁과 범죄를 부추기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물론 (남성 호르몬의 작동이라기보다는) 침략행위에 대한 저항, 공포심에서 기인한 공격, 모성애 등에서 비롯된 싸움도 있다.

전쟁심리나 공격성이 인류의 본능이라면 평화심리와 전쟁을 증오하는 심리 역시 인류의 본능이다. 지은이는 전쟁터의 공격행위가 평화시기에는 시장(市場)과 스포츠 경기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시장과 축구장은 전장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축구, 권투, 소싸움 등은 평화로운 시기에 남성들이 남성호르몬을 해방시키는 방법이고, 어떤 면에서는 인류의 전쟁을 대신하는 면이 있다. 적어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안전한 대체품인 셈이다.

책은 전쟁 중에 선동과 선전이 대중에게 크게 작용하는 까닭으로 언어의 두뇌 조종을 든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괴벨스가 연설과 광고를 중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그들은 연설과 광고로 8천만 독일인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주의시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은 인간의 싸움이 동물의 싸움보다 대규모이고 장기적이며 치열하고 잔혹한 점을 설명하는 데도 상당한 근거가 된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싸움에 몇천만 마리를 동원할 수는 없다. 인간은 짐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언어를 갖고 있어 선동이 용이하고, 그만큼 동원력이 크다는 것이다. 언어와 과학적 사고력 덕분에 인간은 밀림의 악어나 사자보다 1만 배 이상 강한 공격력을 가진다.

지은이는 '문화와 예술로 전쟁을 근절할 수는 없지만, 이런 힘이 합쳐지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각국의 정치가들과 시민들이 전쟁과 거리가 먼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고 즐겨 듣는다면 세계 평화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모차르트의 선율은 사랑, 관용, 자비, 안녕과 평화를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자오신산은 중국 장시성 난창 출신으로 1961년 베이징 대학을 졸업했다. 교수, 작가, 상하이 세계 엑스포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베를린 '율리시스' 르포 문학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364쪽, 1만4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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