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책읽기

얼마 전 모 잡지에서 유명 인사들의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종이책의 위기를 염려한 기획 의도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이런 류의 기사들 대부분이 소개되는 책이 중복되거나 비슷한 것이 많아서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명저란 사람들에게 마치 장식품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책이란 무엇일까? 외갓집에 얹혀 살던 초등학교 시절 삼촌의 좁은 다락방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은 자식 셋을 홀로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가난이 왜 낡은 표지처럼 바스러지기 쉬운 고통인지를 어렴풋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문고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인생론』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던 수험생을 염세주의 철학에 대한 동경으로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다. 1980년대 세상은 암울했다. 학문의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고 사상이란 말조차도 불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평등한 세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야학의 교사 생활에서 만났던 이영희 선생의 저작들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랬다. "만일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기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어떠한 시련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1835년, 17세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고등학교 졸업논문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에서 밝힌 글이야말로 영원한 삶의 지표가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삶은 만만하지 않았다. 30대와 40대 초반을 지나오면서 먹고사는 문제는 자신을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만들었고 책은 결코 현실 속에 있지 않았다. 이제 쉰의 나이가 되었다. 공자는 지천명(知天命)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삶은 의문투성이다. 겨울이 가을을 덮친다. 좁고 긴 골목길에 걸려 있는 전깃줄이 바람에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이 유난히 차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마흔의 중반을 지날 무렵, 갈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친 삶을 버티게 해 준 자양분이 좁고 어두운 다락방의 햄릿이었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표지를 가진 인생론이었으며 뜨겁게 타올랐던 젊은 날의 이영희 선생과 마르크스의 저작들이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된 탓이었다. 오늘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끝내 혁신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전기를 읽는다. 그를 성장시킨 것이 젊은 날의 좌절이었다는 사실에 눈이 흐려진다. 이 순간 기억한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그의 말을.

전태흥/(주)미래티엔씨 대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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