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길기행] 봉화 노루재

선비들 과거길…보부상들엔 봇짐길…임진왜란 안동방어선도

노루재 정상. 낡고 색바랜 표지판이 터널이 뚫린 후 잊혀진 길이 된 걸을 보여준다.
노루재 정상. 낡고 색바랜 표지판이 터널이 뚫린 후 잊혀진 길이 된 걸을 보여준다.
청옥산자연휴양림 전경.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청옥산자연휴양림 전경.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이영우 법전면 어지리 이장이 녹동석문(鹿洞石門)을 설명하고 있다. 녹동석문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곳이 노루재의 시작이다.
이영우 법전면 어지리 이장이 녹동석문(鹿洞石門)을 설명하고 있다. 녹동석문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곳이 노루재의 시작이다.

노루재는 임진왜란의 전적지이며 경북 북부 내륙과 동해안, 강원도를 잇는 화장산 해발 630m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울진과 강원도 등지에서 어물을 싣고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옛길인 십이령(바릿재-샛재-너삼발재-저진터재-새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루재)의 마지막 바지게(다리가 없는 지게) 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물류의 중심지로 1970~90년대 석탄산업의 이동 통로로 번성했던 노루재는 36번 국도상에 노루재 터널이 뚫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가지 않는 길'이 됐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바지게꾼(보부상) 넘던 마지막 십이령 고갯길

경북 봉화군 법전면 어지리에서 시작하는 노루재는 석포면 현동리를 넘어가는 9.3㎞ 구간의 굽이굽이 험준한 고갯길이다.

36번 국도상에 있는 이 고개는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울진군을 잇는 내륙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수세기 동안 석포면의 넛재와 춘양면의 우구치재와 함께 기호지방을 넘나들던 물류 수송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1980년대 초 불영계곡을 통과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울진과 봉화를 동서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130리)였으며, 바지게꾼(보부상)들이 넘던 마지막 십이령 고갯길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고개에는 두 개의 휴게소가 있을 정도여서 당시의 번성함을 실감케 한다.

험난한 고갯길이지만 금강송이 자라고 있어 풍치가 아름답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봉화 석포와 소천면, 서쪽으로는 춘양면, 남쪽으로는 법전면,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화장산 등이 펼쳐진다.

노루재는 예부터 한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중요한 장소이며 역사와 문화권을 다르게 발전시켜온 분기점이다. 또 사람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정을 나누었던 장소요, 오고 가는 길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씻고 쉬어가던 휴식공간이다.

동해안 지방의 수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고개를 넘었고, 때로는 과거에 낙방해 쓰라린 가슴을 안고 다시 고개를 넘는 선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서를 한 아름 안은 고을 관원, 어깨가 부서질 만큼 짐을 진 봇짐장수의 땀도 고개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 고갯길은 강원도 탄광촌인 '약속의 땅'을 이어주던 길로 광부들이 넘나들며 나라 경제를 부흥시킨 길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이 왜군을 무찌른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길은 보부상과 광부, 임란 의병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이다.

고갯길의 시작인 경북 봉화군 법전면 어지1리. 북쪽 산 양호와 남쪽 산 음호가 마주 보는 형세로 범의 양식이 노루여서 노루골이라고 부르며, 이 마을 이름을 따서 노루재라고 부르게 됐다.

이영우(65) 법전면 어지리 이장은 "동쪽으로 가면 신성시하는 흰 사슴이 있다고 해서 백록동천이라고 부른다"며 "흰 사슴은 예부터 신성시하는 동물이고 고고한 선비를 뜻해 이 마을에서 큰 선비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전했다.

녹동석문(鹿洞石門)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곳이 노루재의 시작이다. 36번 국도를 따라 오르는 길엔 가을 풍경이 절경이다. 도로 옆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영동선 간이역(녹동역)의 빛바랜 역사는 노란 가을 단풍과 어울려 영화 속 풍광을 보는 듯하다.

가파른 고갯길로 들어서자 우거진 낙엽과 금강송, 망가진 아스팔트가 유일한 친구다. 이들을 벗 삼아 걷다 보면 고요와 적막함이 밀려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수많은 차량과 인기척, 옛 영화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금강송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만이 길손을 반긴다. 고갯마루 정상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휴게소는 옛 영화를 짐작게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흉물로 변해버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산 아래 터널이 개통된 후 노루재는 시간이 멈춰 버린 길이 됐다.

고갯길이 워낙 나선형으로 꼬여 있어 잠시도 차량 핸들을 놓을 시간이 없다. 고개 정상에 올라서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장관이다. 낙락장송을 품은 산수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바로 해발 630m 노루재 정상이다.

◆젊은이들이 왜병과 혈전 벌였던 임란 전적지

정상에서 소천면으로 내려서면 오른쪽 넓은 평지에 임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장산 주위 30리가 임란 때 이 고장의 젊은이들이 왜병들과 혈전을 벌였던 유서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 제14대 선조 25년(1592)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5만의 적이 평안도와 함경도를 유린한 뒤 이듬해 봄 그의 부하 모리 요시나리가 3천의 병사를 데리고 남하해 강원도 삼척부를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우리나라를 유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사간원 전적(司諫院典籍) 유종개는 부모 상을 당해 상운면 문촌에 왔다가 이곳에 사는 김중청과 힘을 합해 600명의 의병을 모집, 무장시켰다. 선조 26년(1593) 봄, 삼척에 있던 왜장 모리 요시나리가 3천 병력을 데리고 안동땅을 향해 진격할 때 노루재에 600 의병을 매복시켰다가 1천600여 명의 왜적들을 무찌르고 복병을 만나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결국 왜군은 혼비백산해 안동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영양을 거쳐 울진항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이문학 봉화군청 민원담당은 "창의대장 유종개의 장사를 상운면 분촌 주민들이 의관장(衣冠葬)으로 지냈다는 기록을 볼 때, 600 의병의 유해는 대부분 이곳 화장산에 고요히 잠들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정은 유종개에게 예조참판을 추서하고 정려각을 내렸다"고 전했다.

600 의사의 넋을 위로하고 성역을 지키기 위해 화장산에 감관(監官) 1인과 산지기 12명을 배치하고 이들이 사용할 토지도 함께 하사해 영혼을 달랬다. 하지만 구한말 일제 침략 이후 자취가 없어진 것을 1985년 12월 봉화군과 문화원이 임란 전적비를 건립하고 군민의 정성으로 적석봉 7개를 쌓아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광해군 8년 왕명으로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에 유종개 선생과 600 의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충신각이 현재까지 보존돼 오고 있다. 지금도 법전면 어지리에는 그때 왜적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목비골'이라는 지명이 있고 왜적의 목을 나무에 달았던 곳이라 하여 '달래골'이라는 지명도 있다.

실제로 용담전집과 학산실기 삼강행실사적에 따르면 봉화, 영주, 예천, 풍기, 안동, 의성에는 왜군이 들어오지 않았고 류종개는 왜군이 불로 지지고 낯가죽을 벗겨도 굴하지 않고 왜군에게 큰 소리로 꾸짖었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봉화군은 화장산 노루재 일대를 성역화하고 정화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며, 상운면 문촌리 마장평 동평에 있는 유종개 장군의 묘소에 비를 건립하고 의병들의 넋을 기리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또 지난 8월 봉화군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소천면 현동리 848번지에 '임란의병전적지 조성사업'을 마무리하고 위패 봉안 고유제를 지냈다.

이 사업은 정부의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4년간에 걸쳐 추진됐으며, 1만4천471㎡(4천380여 평)의 부지에 국비 17억9천만원, 도비 4억8천300만원, 군비 11억7천200만원 등 총 34억원이 투입돼 사당과 전시관 등 7동의 건물과 석축, 토석담장, 마사토 포장, 의총, 사적비, 부대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김주연 봉화군 공보담당은 "장렬히 순절한 의병 600여 명의 숭고한 정신을 오래도록 기릴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서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백산 계곡 중 으뜸인 고선계곡

청옥산에는 수령이 100년도 넘는 아름드리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 등이 울창하다. 이곳에 전국 최대 규모의 청옥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자연휴양림은 해발 896m로 대관령보다 4m 높은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아름드리 잣나무, 소나무,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나무들 사이를 뚫어놓은 산책로를 따라 은은한 나무 향에 취해 걷다 보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머리 위의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지저귀는 산새들로 흡사 원시 숲 속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휴양림 안에는 물놀이장과 다목적용수댐,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운동장 및 캠프 파이어장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물놀이장은 자연적인 계곡을 막아 만들어 물이 맑고 차다. 수련장은 청소년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기 좋다.

고선계곡은 구마계곡 또는 구마동계곡으로도 불린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계곡에 아홉 필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아무도 이 명당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계곡 중 가장 길어 장장 100여 리(40㎞)나 되며, 수량이 풍부하고 기암괴석과 절벽, 소, 숲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두루 갖춘 태백산 계곡 중 으뜸이다. 구마계곡의 입구는 국도 31, 35호선에서 약 500m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입구마을인 잔대미(백담), 중리, 소현, 마방, 노루목, 큰터, 간기, 도화동 등 자연부락을 거쳐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 이르게 된다.

글'사진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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