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갈 곳 없는 가출청소년, 거리 헤매다 '내일' 잃다

또래 여러명 '패밀리' 생활고 허우적대다 결국 범죄 수렁으로

1일 오후 대구 2
1일 오후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 직원들이 청소년들을 상대로 가출 예방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일 밤 11시 대구 북구 쪽방촌. 2층의 한 쪽방에 들어서자 낡은 체육복 차림의 임정하(가명'18) 양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6.6㎡(2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자 벽 한쪽에 3층으로 쌓아올린 종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엔 옷가지, 양은냄비, 버너, 라면, 세면도구 등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고 방바닥에는 과자봉지, 비닐, 옷가지 등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임 양은 "하루 12시간씩 인근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한 달에 80만원 정도 벌지만 건강이 안 좋아 병원비로 절반이 들어간다. 월세 10만원 내기도 버겁다"고 했다.

◆'가출팸'(가출패밀리) 확산

임 양은 가출한 지 2년이 넘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알코올 중독에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지난해 7월 대구에 왔다. 당시 남자친구(18세)가 대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출 상태였던 그들은 1년 가까이 함께 지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둘 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임 양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남자친구가 떠난 것.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겨울 임 양은 인근 중국집에서 주방일을 돕다 왼쪽 팔에 큰 화상을 입게 됐다. 그는 이후부터 이곳에 남겨졌다. 임 양은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지겨울 따름"이라며, "나 같은 청소년들도 있다는 걸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가출 청소년끼리 모여 사는 이른바 '가출팸'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대책은커녕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편부 가정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다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집을 나온 뒤 올 3월 대구시청소년쉼터에 잠시 머물렀던 이가은(가명'18) 양. 그는 쉼터에 오기 전 역시 가출 청소년이었던 최윤정(가명'19) 양과 함께 살았다. 함께 잘 살아보자던 최 양은 생활비가 부족해지면서 변해 버렸다. 결국 이 양이 믿고 따르던 언니, 최 양은 포주가 되어 이 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 양은 이를 견디지 못해 쉼터로 도망치듯 빠져나오게 됐다. 하지만 이 양은 쉼터 생활 2개월도 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렸고 현재 같은 또래 4명이 가족을 이뤄 성매매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관심과 대책을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들은 경제력이 없어 성매매 등 각종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수정(가명'16) 양은 편부 가정에서 살다 새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오게 됐다. 그는 가출을 수차례 반복하다 올 1월 쉼터로 오게 됐다. 정 양은 쉼터에서 만난 또래 친구 2명과 함께 북구 복현동 한 원룸에 둥지를 틀었다. 몇 개월 후 이들은 각기 다른 남자친구 3명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 적당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할 수 없었던 이들은 인근 가게에서 생필품을 훔쳐 가며 생계를 유지했다. 정 양을 비롯한 3명은 보도방에 나가 유흥업소를 돌며 생활비를 보탰다.

최근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계단 위 좁은 공간에서는 남녀 가출 청소년 6명이 보름 동안이나 머물다 발견된 적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은 대학가나 집값이 싼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 등 또 다른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재)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는 지난달 28일부터 올 연말까지 대구의 청소년 밀집 지역을 돌며 가출 청소년 계도 활동과 생필품, 의료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가출팸'에 대한 실태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대구시청소년쉼터 손병근 팀장은 "전국적으로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에 이른다. 대구지역에도 상당 수의 청소년들이 가출팸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판단해 가출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탐문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며,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주기적으로 가출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는 가출 청소년을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이나 이에 대한 제보 전화를 받고 있다. 문의는 청소년 긴급전화 1388, (재)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 053)659-6290.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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