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폐암 4기 엄마 돌보는 지체장애 딸 민영 씨

삶의 그늘 되어준 엄마 "이렇게 보낼 순 없어요"

지체장애인 이민영 씨는
지체장애인 이민영 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장 부종'을 앓고 있다. 그는 폐암 말기인 어머니와 두 딸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엄마, 왜 자꾸 자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1일 오후 대구 동구의 한 병원 중환자실. 이민영(가명'40'여'지체장애 3급) 씨는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 박익순(가명'69) 씨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딸의 이름을 부를 힘도 없는지 어머니 박 씨는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약 한 달 전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박 씨는 이제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민영 씨는 엄마의 죽음을 마주할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했다.

◆한순간 무너진 집안

민영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대화를 나눌 때는 비장애인과 같지만 걸음걸이와 팔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장애가 겉으로 드러난다.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민영 씨는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이 꼭 부모의 탓인 것 같아서다. 아버지 이춘복(가명'70) 씨는 "애가 자라다가 사고를 당했으면 자기 운명이라고 생각할건데 태어날 때부터 저렇게 장애가 있으니 아버지로서 항상 죄의식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민영 씨가 어릴 때만 해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아버지는 수산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일을 했다. 당시 공장을 2곳 넘게 운영하며 돈 걱정없이 살았다. 민영 씨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포항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딸의 장애를 치료하고 자녀 공부를 시키려면 서울이 더 낫다는 아버지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집안에 어려움이 닥친 것은 1982년이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 이 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영자 사건'을 피해가지 못했다. 장영자 사건은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렸던 장영자와 남편 이철희가 일으킨 수천억원대 대규모 어음 사기 사건이다. 장영자는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접근해 자금 지원을 대가로 어음을 받아 이를 시중에서 할인하거나 다른 회사 어음과 교환하는 수법을 썼고 당시 기업은 물론 금융계에도 큰 충격을 줬다. 이들에게 돈을 빌렸던 이 씨도 이 사건에 휘말려 사업은 부도가 났고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됐다.

◆망가진 몸과 마음

그래도 민영 씨는 학업을 이어갔다. 미술학도가 되고 싶었던 민영 씨는 서울의 한 여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뇌성마비 장애 때문에 선 긋기와 채색 등 섬세한 손놀림이 요구되는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 대안으로 택한 것이 조소였다. 하지만 공부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학비 마련이 어려웠고 장애인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탓에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민영 씨가 삶을 포기하고 있었던 1995년 남편(41)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배가 불러온 딸의 결혼을 끝까지 반대했지만 민영 씨는 결혼식도 안 올린 채 혼인 신고를 했다. 그해 첫째 딸 성미(가명'18)가, 2년 뒤 둘째 딸 성주(가명'16)가 태어났다. 결혼도 힘든 삶의 행복이 되지 못했다.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했고 결혼은 지옥이 됐다. 민영 씨는 "남편이 두 딸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이 사람과 살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민영 씨는 2001년 이혼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남편의 폭력, 두 번의 시련으로 민영 씨의 몸과 마음은 망가졌다. 이혼 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민영 씨는 부모와 두 딸과 함께 도망치듯 대구로 내려와 영구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또 다른 아픔이 찾아왔다. 온몸이 퉁퉁 부어 찾아간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장 부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제 이뇨제 없이 혼자 소변을 보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지금도 그의 배는 임신부처럼 불룩 솟아 있고 온몸에는 물집이 터진 상처로 얼룩져 있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자 민영 씨는 세상과 연을 끊으려고 했다. 그랬던 그를 이 땅에 붙잡아 둔 것은 두 아이였다. "엄마가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아이들이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영원한 그늘이 사라지다

민영 씨에게 또다시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어머니의 폐암 진단은 민영 씨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칠순을 앞둔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마흔 살 딸 대신 모든 것을 했다. 두 손녀를 위해 밥을 짓고, 교복 셔츠와 양말을 삶아서 빨 정도로 부지런하게 살림을 꾸렸다. 민영 씨는 엄마가 끝까지 그의 그늘이 돼 줄 것이라고 믿었다. 엄마는 항상 건강할 것이라고 애써 현실을 외면했던 것이다. "지난해 엄마가 대상포진에 걸려 얼굴이 마비됐었어요. 그때 한의원에서 침 맞았는데, 그때부터 몸이 신호를 보낸건 데." 지난달 7일, 박 씨가 기침을 심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병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박 씨는 폐 3분의 1이 암세포의 공격을 받아 망가져 의료진도 손 쓸 수 없는 상태다. 이 세상과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엄마, 엄마." 민영 씨가 또다시 엄마를 부르짖는다.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엄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슬픔 탓이다. 이제 민영 씨가 두 자녀를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 웃음보다 눈물이 많았던 인생에서 두 자녀는 웃고 살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서야 한다. 민영 씨가 눈물을 닦아야 하는 이유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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