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
종이인지 흑연 덩어리인지 모를 물체가 바스러질 듯 놓여 있다. 작품에서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작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최병소의 작품은 이렇듯, 관객들에게 '무심함'을 들려준다.
최병소 제1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 기념전이 1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열린다.
작가는 신문지 위에 빈틈없이 볼펜으로 앞뒤 빽빽하게 칠한 뒤 그 위에 연필로 까맣게 덧입힌다. 그러면 신문이라는 본래의 물성은 사라지고 시커멓게 타버린 재를 연상시키는 물질만 남는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해왔다.
"내가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동네 문구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담뱃값 정도의 저렴한 재료비로도 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해왔으니까요."
신문의 복잡한 주식시세, 정치, 경제 등 모든 소식이 그의 손길을 거치면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변한다. 의미 있는 것들은 모두 그 의미가 휘발되고, 검은 물질만 남아 바람결에 흔들린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비디오 아트 초기 미발표작이 선보인다. 1978년 비디오 영상 작품인 이 작품은 이강소, 최병소 등이 작업 모습을 찍은 120분짜리 영상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 작품이 한국에서 최초의 비디오 아트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최병소는 단지 들썩이는 등이 나올 뿐이다. 신문 위에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노동을 연상시킨다.
"나는 몸에서 나오는 작업이에요. 머리, 가슴에서 나오는 작업이 아닌 몸에서 나오는 작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자 작업도 전시된다. 문자로 세상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작업은 단어의 모양과 의미를 생경스럽게 만든다.
잉크가 다 닳아버린 볼펜으로 책갈피를 긁어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신문지뿐만 아니라 트레싱지 위에 볼펜으로 작업한 작품도 선보인다. 볼펜으로 지우고, 연필을 덧입히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1970년대 사진 작품이 전시장에 걸린다.
눈에 띄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요즘 미술품들 가운데서 최병소의 작품은 '무심함'의 미학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053)606-6114.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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