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대구의 북부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도매시장 시설과 운영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문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점을 실감하였다. 도매시장 운영을 비롯한 유통 전반에 걸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역경제의 발전도 어렵다고 느껴졌다. 정부가 50여 개의 공영도매시장을 건설하고 크고 작은 유통시설을 확충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여전히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가 불만인 것이 농수산물 유통의 현실이다.
유통개선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합리한 유통구조는 수급 불안정과 겹쳐져 가격 파동이 수시로 되풀이되곤 한다. 지난해 우리는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원을 넘어서 '금배추'라는 말까지 나온 이른바 '배추파동'을 겪었으나, 불과 1년 만에 배추값은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적정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유통구조의 비효율, 가공 및 저장시설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농산물 가격 중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달하고 농민들은 소비자 가격의 56% 정도만 받게 된다. 농산물이 땅에서 수확되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약 일주일의 기간이 걸린다. 자연히 신선도가 떨어지고 유통비용도 많이 든다. 복잡한 농산물 유통 구조로 인해 "이 땅의 농산물은 피곤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농수산물 유통은 인체의 혈액 순환에 비유된다. 혈관의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면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듯이 농수산물 유통도 원활하지 못하면 장애를 가져온다. 유통과정의 장애는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의 낭비와 비효율을 가져온다. '유통여수'(流通如水)라는 말과 같이 유통은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 것이다.
농수산물 유통혁신을 위해서는 첫째, 제도개선에 대한 유통종사자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유통구조 개선은 거래제도나 시장운영 개선이 수반되나 많은 유통종사자들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필자는 과거 농림부 시장과장, 유통정책과장, 농산물 유통국장을 역임하면서 농안법 파동을 수습하고 전 품목 상장제를 도입하였으며 수집상 등록제를 실시하는 등 많은 제도를 개선하였다. 제도 개선으로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들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으나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끈기 있게 설득하여 이해를 구한 결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다. 유통개선을 위해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화와 설득으로 유통관련자들을 설득하는 자세와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유통부문의 운영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농수산물 유통은 도매시장이나 공판장 건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날씨를 걱정하며 하늘만 쳐다봐서도 안 된다. 대형유통업체의 등장에 대비하여 여러 형태의 직거래 체제를 구축하거나 종합 유통센터를 설치하여 시장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보기술 발달로 온라인 거래도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수시로 가격과 출하동향, 거래내역 등 유통정보를 잘 파악해야 하고 해외 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경상북도가 운영하는 농특산물 인터넷쇼핑몰 '사이소'의 올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2.5배나 증가하면서 누적 매출액이 47억원을 돌파한 것은 정보경쟁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좋은 사례이다.
셋째, 유통개선을 위해서는 식품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식품산업 발전은 농수산물 수급불안을 해결하고 가공과 저장,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 국내 식품산업의 기반은 매우 취약하여 식품업체의 수는 3만 개가 넘으나 연간 매출액 50억원 이상인 기업은 40여 개 정도에 불과하다. 연간 매출액이 1억원 미만인 업체가 93% 정도로 대부분의 식품기업이 영세하다. 전통식품을 육성하고 가공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된다. 지역단위의 크고 작은 식품 기업은 지역 농산물의 구매, 가공, 판매, 수출입을 통하여 지역경제 발전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농수산물 유통의 중요성은 나날이 증대되고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 개선 없이 농어가 소득 증대나 농어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생산이 아무리 잘되어도 유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 부족의 시대에는 생산증대로 농어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생산된 농수산물의 효율적 유통이 핵심적 과제이다. 바야흐로 "유통자가 왕"이라고 하는 '유통의 시대' 또는 '유통자 주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유통이 생산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생산자나 소비자가 아닌 유통자가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농수산물 유통개선에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기대한다.
김재수/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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