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양준혁

야구 팬들 가운데서도 한국 프로 리그가 출범하던 1982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야구를 봐온 이들이 있다. 그들은 '프로 원년 팬'이라는 사실을 훈장처럼 내세우며 야구에 몰입하는 사람들이다. 딴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아트디렉터, 평론가, 연구원, 이런 직함을 내 명함에 새겨 넣을 순 있어도 야구광이란 말은 좀 그렇다. 정신성이 고양되고 감각이 세련된 지식인 사회, 예술계 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져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 내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반응은 "참 의외시네요"가 많다. 야구가 어때서.

책 디자이너 정병규가 씨네21 김혜리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른 스포츠나 영화, 공연예술 같은 경우에는 보는 사람들이 거기에 빨려 들어가서 몰입한다. 그런데 야구는 그걸 거부한다. 마치 현대미술이나 현대무용처럼, 야구는 가까이 가려면 '넌 거기 계속 떨어져 있어. 지금 넌 생각할 때야'라며, 우리를 밀쳐낸다. 야구를 보는 나는 동시에 온전히 나를 지켜볼 수 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1982년 3월에 벌어졌던 프로야구 개막식. 26일인지 27일이었는지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이상하게 다른 건 다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 입었던 내 옷까지 생각날 정도니까. 경기 초반에 넉넉히 이기던 점수 차이가 줄어들었다. 나는 중계방송을 더 못 보고 대명1동 우리 집 정원 돌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터져 나온 청룡의 역전 만루홈런. 나처럼 야구 원년에 삼미 슈퍼스타즈 팬이었다는 소설가 박민규가 내 말을 들었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핀잔을 줬겠지만, 나도 인생에서 첫 번째 좌절을 겪었다. 이 좌절감은 가을 한국시리즈 때마다 종종 도졌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한팀이 됐는데 왜? 대통령이나 높은 사람들도 죄다 대구 출신인데 야구는 왜?

영국 소설가 닉 혼비는 자신의 축구팀 애정 편력에 관한 에세이집 '피버 피치'(Fever Pitch)에서 멋진 말을 했다. 그는 아무리 공부 못하는 자식이라도 딴 집 아이와 바꿀 수 없듯,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매번 진다고 좋아하는 팀을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지조를 드러냈다. 맞다. 돌이켜 볼 때, 만약 라이온즈가 우승을 밥 먹듯이 했으면 내가 과연 야구에 이처럼 빠져들 수 있었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해, 나와 동년배 야구선수 한 명이 등장했다.

양준혁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냥 팬이지만 그는 선수였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양준혁은 프로팀에 입단하기 전에 전국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당찮은 말 같지만, 나는 야구선수 양준혁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신인으로 엄청난 데뷔를 했고, 김성래 강기웅과 패를 이룬 3, 4, 5번은 지금도 내가 꼽는 최고의 클린업 트리오다. 그렇지만 이 대단한 선수는 다른 팀으로 계속 떠돌았다. 그는 극적으로 라이온즈로 돌아왔고, 그 해 팀은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82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열린 그 경기를 나는 야구장에서 봤다. 20년 전 개막전처럼 결승 홈런으로 승부가 가려진 그날 우리 친구들은 어린애처럼 부둥켜안았다. 양준혁도 물론 그랬다.

시간은 한참 흘렀고, 그의 은퇴식을 나는 TV로 덤덤히 지켜봤다. 그날은 1982년처럼 비통하지도 않았고, 2002년처럼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쨌든 양준혁은 선수로 더 이상 야구장에서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멀리 사라지지 않았다. 은퇴 전부터 트위터에 재미를 붙인 그는 팬들과 소통한다. 재단을 만들어서 뜻있는 사업을 펼친다. 야구 해설자로 등장한다.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한다.

의미 있는 일이다. 다 좋은데 말이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려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별 안 되던 눈물의 은퇴식을 한 주인공인데, 짧게라도 우리들의 눈과 귀에서 멀어져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 위대한 야구선수가 그 점에서는 내 생각과 다른 것 같다. 아니, 나 같은 속물들과는 격이 다를지도 모른다. 스타 선수들이 은퇴하면 미국 일본 구단에 코치 연수를 떠나는 게 선진 야구를 습득하는 목적만 있을까? 그들은 선수 시절에 쌓았던 카리스마를 부재(不在)를 통해 유지한다. 그리고 감독이나 코치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예전 칼럼 '변신'(變身)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루었다. 그게 육체적 활력이 쇠퇴한 운동선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낙선한 정치인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예술가들이 곧잘 선택하는 길이 외국 유학이다. 거기서 무얼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게 중요하다.

윤규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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