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지역사회나 도시의 범죄가 증대하거나 감소하는 원인을 암시하는 이론이다. 좀 더 풀이해 보자.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공동 발표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역에서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람들은 법질서를 어겨도 괜찮다는 신호로 인식한다. 내버려두면 주변의 유리창은 모두 부서지고 지역은 빈민가나 범죄도시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찾아보면 깨진 유리창 같은 구역들이 없지 않다. 돈으로 유리창을 새것으로 즉각 갈아 치우고 경찰이 그 지역 순찰을 강화하거나 매일 거리를 청소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포항시내 중앙상가 지역은 많은 청소년이나 젊은 커플들이 찾는 쇼핑 지역이다. 주말이면 더욱 북적이는 장소다. 그럼에도 그 곳에는 발길을 내딛기를 꺼리는 후미진 틈새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곳에 지역의 네 명의 예술가들, 일명 '아트 커뮤니티 공감'(Art Community Compassion)이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기획하고 지난달 29일에 시도했다. 7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틈새의 담벼락에 새 칠을 했다. 거리 예술(Street Art)을 시연한 셈이다.
기획한 사람들은 그 작업을 '예술의 숲' 프로젝트라고 작명했다. 문화를 통한 창조적 도시 가꾸기의 일환이라 했다. 골목 담벼락의 그림 작업에서 시작해 앞으로 간판 꾸미기, 상가 입구 입체물 제작 등 2, 3차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실천하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예술과 만남을 통해 중앙상가 거리를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창조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그렇다. 예술가의 눈과 손길에는 후미진 공간을 '미적 공간'으로, 벽화를 매개로 사람들은 유인하는 '견인 장소'로 재창조하려는 의지가 묻어 있다.
지역사회의 발전론적인 시각에서도 숨겨진 의도를 읽을 수 있으리라. 어둡고 지저분해 사람의 발길을 막는 곳에서 벽화라는 매개물로 사람을 유인한다. 거리가 깨끗해진다. 사람이 모인다. 거리와 상가가 살아난다. 관광지로 변모한다.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하고 관광지로 성공했다고 자랑하지 않겠는가.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받는 벽화 거리가 조성됐고, 이미 관광지로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고양시가 바로 그 주인공. 고양시는 벽화조성사업 계획을 세워 자원봉사자와 참여 단체를 유인했다. 주민들이 동의해 담장과 골목길 등도 벽화로 장식됐다. 소외된 지역에도 예술의 손길이 전달됐다. 지역 예술애호가 집단과 학생들이 작업에 참여하고 기업으로부터 페인트를 후원 받아 거버넌스 운동 모범 사례라 선전하고 있다.
고양시의 사례가 바로 시가 주도한 '하향식 거버넌스'(Top-down governance)다. 하지만 포항은 예술애호가(Art Community Compassion), 중앙상가 상인회, 상인 등 시민이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상향식 거버넌스' (Bottom-up governance)로 지역사회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소수 시민이 창출한 참신한 발상으로 슬기롭고 소중한 시도라고 봐야 할 시점이다. 공해 유발기업을 유치해서라도, 특정 기업에 땅 특혜, 혹은 법 위반이라는 '쓴소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업투자를 유도해 고용과 수입(돈) 증대로 지역민들을 감동시키겠다는 원대한 지역경제 개발 논리를 우선해왔다.
담배 꽁초와 쓰레기들이 버려져 지저분한 후미진 거리가 예술가를 만나 깨끗해진다. 예술적인 정서를 호흡할 수 있는 신성한 감동을 주는 공간이 창출된다. 사람이 모여들고 상가가 살아난다. 지역상가 주민이 협조하고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포항시를 예술적 향기가 맛볼 수 있는 도시에로 전환, 이러한 소박한 시도를 두고 '주민주도형 지역발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이 듣기 싫은가. '예술형 도시 재건 새마을 운동'이라면 어떤가.
포항시는 거대 개발에 따른 환경오염 유발형 기업 유치로 지역민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지역경제 개발 정책을 지양하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주민 참여를 유도해 공동체 정신을 실현시키는 지역발전 정책에 개발 역량을 더욱 집중하라. 그러면 희망하는 행복도시로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으리라.
양만재/포항지역복지연구소장·사회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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