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깊은 밤, 소낙비를 피해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다 당신을 얼핏 보았던 건 우연이었지요. 당신은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지요. 비록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가볍게 떨리는 어깨너머로 당신이 숨죽여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늦은 시간 이국의 처녀가 공중전화를 붙들고 울고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습니다. 화려한 옷차림에 짙은 화장, 당신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날아온 이국의 처녀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요. 눈물로 화장이 지워져 엉망이 된 얼굴로 애써 흐느낌을 감추고 있는 당신에게 연민을 느꼈다면 뭐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요. 당신의 그 얄팍한 연민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얼마 전, 이미 술에 취한 후배들을 따라간 술집에서 당신과 같은 처녀들을 만났지요. 아팠습니다. 이국의 땅에서 짧은 언어로 낯선 남자들의 불편한 눈길을 받아야만 하는 젊음이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 사내들의 핏발 선 욕망이 더 거칠어지던 시간, 끝내 자리를 피하면서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스스로 묵인하고 방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것만큼이나 감추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후배들은 말하더군요. "어차피 다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미덕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돈 몇 푼으로 사람을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의 미덕이라면 정의라는 것,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라는 것은 있기나 한 것일까요. 다음 날 아침, 신문에 99% 대 1%라는 구호로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시위대의 소식은 소위 세계화라는 덫이 놓은 불평등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지요. 이미 우리에겐 현실이지만 마치 먹이사슬처럼 또는 마약처럼 우리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우리는 그 불편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목이 멨습니다. 그것은 마치 타조가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다 결국에는 보지 않으면 따라오지 않는다고 느끼고 머리를 모래에 묻어 버리는 것처럼, 외면하고 상관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와 같은 것입니다.
비가 잦아들었지만 전 공중전화 부스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신보다 먼저 자리를 떠나는 것이 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행여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뿐인 것은 아닌지 당신이 울고 나간 그 빈 자리를 다시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전태흥/(주)미래티엔씨 대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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