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삼국이 형성되기 이전으로 본다. 문자가 들어온 것은 음성언어를 기호로 표기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언어와 문화의 교류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자는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우리말을 적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두(吏讀)다. 이두는 넓은 의미로는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방법들, 곧 서기체, 구결, 향찰 등을 총칭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한문 문장에서 실질형태소는 한문 그대로 쓰고 형식형태소 부분만을 우리말 식으로 쓰는 방법을 일컫는다.
문화의 교류에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교류가 따른다. 어느 나라 말도 그 나라 고유어만으로 된 것은 없고 외래어가 섞여 있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외래어의 비율과 외래어에 대한 언중(言衆)의 태도다. 우리 한국어는 15세기만 해도 고유어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그 뒤 중국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중국어(한자어)가 많이 들어와 고유어의 자리를 빼앗았다. 거기에는 문화적 사대주의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그들이 우리말을 말살하려 들었으니 고유어가 위축되고 일본어가 세력을 떨치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광복 후에는 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영어를 비롯한 인구어(印歐語) 계통의 언어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순수 우리말은 외래어 틈바구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질식해 죽어가고 있다.
어느 학생이 쓴 글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조금 손을 본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언어의 현실이 어떤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어제 오픈한 레스토랑의 코너 테이블에 걸프렌드와 같이 앉아서 스테이크를 먹고 웨이터가 가져온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었다."
이게 과연 한국어인가? 언어의 중심이 되는 체언들이 거의 모두가 외래어다. 이건 마치 한문 문장에다가 형식형태소만 우리말 식으로 쓰던 이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어느 국어학자는 오늘날의 한국어를 '현대판 이두'라고 불렀다.
외래어가 우리말의 중심을 점령하게 된 것은 개념의 표현을 위한 부득이한 것이 아니다. 문화적 사대주의, 우리 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열등의식이 만들어 낸 결과인 것이다. 대학마다 국어국문학과가 있고, 국립국어원이란 것도 있고, 또 국어과 교수가 얼마며, 중고등학교 국어과 교사가 얼만데 이런 현상을 방치해 놓고 있어서 되겠는가? 언어의 노예는 문화의 노예가 되고, 드디어는 인간적인 노예가 되고 만다는 무서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중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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