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개그콘서트

요즘 하도 세상이 어수선하니 도무지 살 맛이 없다. 서민 경제는 점점 오그라들고, 정의는 죽어 나자빠진 지 오래 됐다. 인간의 신의와 의리는 온데간데없고 다만 사기꾼과 강도들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우리 앞에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인간은 고통이 생기면 사고장애가 일어나 스스로 희망이 없다는 속단을 내려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연약한 인간의 희망을 늘리려면 고통을 줄여야 한다. 문학, 미술, 연극 등의 예술과 노동, 수양, 운동 등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고 이윽고 희망을 주는 행위이다. 이것 중에 코미디가 제일 좋다. 그 중에서도 고관대작과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잡혀갈 때 보여주는 생쇼가 가장 재미가 좋다. 이 인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검찰에 불려갈 때나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 벌이는 의상, 소품 그리고 표정 연기와 제스처는 정말 예술적이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수법들을 보면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게 첫 번째 순서이다. 그리고 수염을 기른다. 그리고 제 취향에 맞는 제스처나 의상과 소도구들을 가미한다. 몇 년 전 무슨 철강회장은 입원 뒤에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갑자기 벙어리가 돼 모르쇠로 일관했고, 어떤 정치인은 아예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한 채 조사받으러 다녔다. 더 멋있게 하는 사람은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매단 채 법원에 출두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사고 친 어떤 연예인은 귀국 시에 목발을 집고 공항을 나온 적도 있다.

처음에는 이런 태도를 보면 무척 미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런 행동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 때부터 슬슬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차림으로 검찰에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고 얼굴은 무엇으로 가릴지 표정은 어떻게 지을지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런 생쇼가 오래되다 보니 드디어 남의 나라에 수출이 되기 시작한다. 놀라운 일이다.

11월 15일 필리핀에서 전직 대통령의 딸이며 자신도 대통령까지 했던 글로리아 아로요가 우리나라의 고위층의 검찰 출두 복장을 훨씬 능가하는 모습으로 공황에 나타나서 나는 한참 웃었다. 아직 부정부패가 단죄되지 않았는데 잠시 출국금지가 풀린 틈을 타서 외국으로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공항에 휠체어를 타고 도망가다 잡힌 것이다. 이 여자는 휠체어에 타고 마스크를 하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가슴에는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징징 울면서 마치 죽기 일보 직전의 사람 행세를 하고 나타났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더니 역시 고관대작들과 대기업 총수들은 썩어도 준치다. 비록 영어의 몸이 될지언정 이런 고통의 바다에 헐떡이는 중생들을 위해 자신의 한 몸 망가져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기립박수로 환영해야 할 것이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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