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압록강의 빛과 어둠

중국 단둥에 왔다. 통일학부 학생들과 함께 인천에서 배를 타고 북중 경제협력의 현장을 보러왔다. 저녁에 출발한 동방명주호가 아침이 되어야 압록강에 닿았다. 압록강 입구는 넓었다. 단둥항은 공사가 한창이다. 동북지역의 물류가 넘쳐나면서, 외항의 규모를 넓히고 있다. 항구의 야적장에는 석탄이 쌓여 있다. 인입철도가 연결되어, 동북 지역의 자원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 남부 지역으로 실려 간다. 멀리 단둥시내가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병참 도시였던 단둥은 이제 북중 경제협력의 거점 배후도시다.

항구에서 나와 시내로 조금 가다 보면, 황금평이 나온다. 철조망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이다. 압록강 하구에는 비단섬, 위화도를 비롯한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1960년대 북중 양국의 국경협정에서 대부분의 섬은 북한 땅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황금평은 침수위험이 낮은 안정적인 땅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섬이지만, 중국과는 바로 육지처럼 붙어 있다. 공단이 들어설 수 있는 입지적 특성이 있다. 올해 6월 북중 양국은 이곳에서 성대한 착공식을 했다. 개성공단 비슷한 공단을 만들 예정이다. 황금평의 면적은 11.45㎢에 달한다. 여의도의 1.5배 면적이다. 다섯 달이 지났지만, 개발속도는 더디다.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국내에서는 중국이 나진항을 얻기 위해 황금평을 끼워 넣었다는, 다시 말해 중국이 내키지 않은데, 북한의 요구로 황금평 개발을 합의했다는 주장이 있다. 근거 없다. 황금평 앞에 서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곳은 농토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가을걷이가 끝난 볏짚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애초에 착공식은 형식적이었고, 추수 후에 공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겨울로 접어든다.

황금평에 공장이 들어서고, 정보산업, 관광문화산업을 위한 본격적인 인프라 공사는 아마도 봄이 와야 할 것이다. 황금평은 단둥경제특구와 붙어 있다. 그 근처에는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고층빌딩의 숲이다. 2015년 완공 예정인 량터우 신도시는 단둥을 더 이상 변방의 소도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동북 경제권의 거점도시로 변모시킬 것이다. 벌써 인구가 250만 명에 육박한다. 동북으로 여러 갈래의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이제 곧 신의주로 연결되는 신 압록강 대교가 건설될 예정이다. 단둥항이 다롄항을 대체할만한 물류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북한경제의 배후도시로 커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북중 양국의 임금격차가 커지면서, 북한의 낮은 임금은 중국 입장에서 매력적이다. 황금평은 성장하는 단둥의 생산기지가 될 것이다.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훨씬 크다. 북중 양국은 이미 봉제업은 말할 것도 없고, 소프트웨어나 애니메이션 산업 등을 이곳에 유치하기로 합의했다. 저 넓디넓은 들판이 단둥이 최근 걸어왔던 상전벽해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아가 신 압록강 다리가 건설되면, 단둥과 신의주의 경제적 연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황금평의 봄은 북중 경제협력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동북 경제권의 상징적 공간이 될 것이다.

어둠이 내리자, 압록강 철교에 불이 들어온다. 1950년 11월 미군이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위해 폭격했던 끊어진 철교도,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조중우의교'에도 조명이 켜진다. 야경은 아름답다. 도시의 경제력을 반영한다. 불빛은 다리에서 멈춘다. 압록강 이쪽에는 강변의 가로등이 켜지고,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화려하다. 그러나 저쪽 신의주는 암흑이다. 밤이 오면, 신의주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압록강 철교가 허공에 매달려 있다. 언제쯤 압록강의 저쪽도 밝아질 수 있을까?

북중 접경에 서면, 언제나 착잡하다. 나는 왜, 이 먼 길을 돌아 분단의 땅을 바라보아야만 하나? 남북관계의 단절이 아프다. 남북경제협력의 부재가 아쉽다. 경제영토의 확장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 오늘, 빼앗긴 황금평의 들판이 너무 아쉽다. 이렇게 북방의 경제영토를 영영 잃어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두만강의 나진항을 잃었다. 광물자원들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황금평으로 밀려올 중화의 남하는 결국 남북경제공동체의 꿈을 앗아갈 것이다. 국경의 밤이 시름없이 깊어 간다.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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