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는 겨울철 별미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시린 바닷바람을 맞고 꾸덕꾸덕 익어가는 과메기,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와 오징어는 구룡포가 자랑하는 겨울철 삼미(三味)다. 바다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구룡포는 예로부터 풍부한 먹을거리를 자랑하는 풍어의 고장이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어업 전진기지로 수탈의 현장이 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과메기
구룡포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구룡포뿐 아니라 울진, 영덕에서도 많이 잡히는 대게와 달리 과메기는 구룡포의 전매 특허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과메기의 90% 이상이 포항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이 중 80%가 구룡포산이다. 과메기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관목(貫目'물고기 눈을 끈으로 꿰어 여러 마리를 묶는 것)에서 관메기→과메기로 변천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원래 과메기 재료는 청어였다. 청어가 잘 잡히지 않으면서 점차 청어 과메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꽁치도 원양어선들이 잡아온 것을 사용한다. 구룡포과메기사업조합에 따르면 연안에서 잡히는 국산 꽁치의 수가 많지 않고 기름기가 적어 과메기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산 꽁치는 봄에 횟감으로 사용되거나 배를 가르지 않고 통째로 말리는 통과메기 재료로 사용된다.
구룡포가 과메기 본고장이 된 것은 냉동과 해동 과정을 거치며 숙성해가는 과메기의 특성과 지리적 여건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메기 맛을 좌우하는 것은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이다. 겨울 구룡포에는 강한 북서풍이 분다. 영일만을 건너오면서 습기를 가득 머금은 북서풍은 구룡반도 산줄기를 넘으면서 습기를 내준 뒤 더욱 차가워지고 건조해진다. 이 바닷바람이 꽁치를 얼리고 녹이는 것을 반복하면서 비린내를 없애고 진득한 맛을 불어 넣는다. 구룡포 과메기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생산되지만 피크 시즌은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12월과 1월이다. 배를 가르고 손질을 한 뒤 겨울바람에 3, 4일 정도 말리면 입맛 당기는 과메기가 된다.
겨울 구룡포에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과메기 말리는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구룡포항뿐 아니라 여름철 피서객들로 북적이던 구룡포해수욕장과 인적 드문 겨울 바닷가에는 어김없이 과메기 덕장이 설치되어 있고 덕장에는 시린 겨울바람을 맞으며 익어가는 과메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과메기는 구룡포과메기사업조합을 통해 구입하면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조합에서는 ㎏당 1만4천원에 과메기를 판매하고 있다. 과메기는 미역'김'쪽파 등을 곁들여서 먹는다. 조합에서는 즉석에서 과메기를 먹을 수 있도록 구룡포항 검역소 인근에 직판장도 운영하고 있다. 과메기와 쌈 재료를 함께 넣은 2만5천원짜리 세트를 구입하면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다.
◆일본 가옥거리
구룡포에는 일제강점기 침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가 풍부한 어장을 자랑하는 구룡포를 어업 전진기지화 하면서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해 살았기 때문이다. 구룡포항에서 상가들이 늘어선 쪽을 바라보면 언덕 위에 자리잡은 구룡포공원이 보인다. 구룡포공원 주변은 과거 일본인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지금도 일본식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어 아픈 역사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구룡포우체국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일본식 목조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색적인 풍경이지만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결코 이색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일본 가옥거리에는 낡은 일본식 건물 50여 채가 남아 있다. 건물 앞에는 이발소'백화점 등 건축 당시의 용도를 보여주는 사진이 걸려 있다. 일본식 가옥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일제강점기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낸 하시모토 젠기치의 2층 집으로 일본 가옥거리 홍보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홍보관은 문을 닫은 상태다. 포항시가 근대문화역사거리 관광자원화 사업을 위해 2013년 9월까지 일본 가옥거리에서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세월이 흘러 원형을 잃어가는 가옥들이 있어 이를 보존하기 위해 관광자원화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일본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최대한 원형대로 건물을 복원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일본 가옥거리 중간에는 일본 신사가 있던 구룡포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일본 수산업자 '도가와 야사브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가 흉칙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해방이 되자 지역 청년들이 송덕비 위에 시멘트를 부어 버렸기 때문이다. 송덕비 위에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과 충혼비가 서 있다. 구룡포공원에 서면 구룡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요로움이 수탈의 빌미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오어사
신라시대 세워진 천년 고찰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찰 가운데 몇 안되는 현존 사찰이다. 사찰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법력으로 물고기를 살려내는 내기를 하다 물고기 한 마리를 두고 서로 자기가 살린 물고기라고 주장한 뒤부터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진다.
오어사는 배산임수의 독특한 풍경 속에 안겨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지만 오어사는 산 아래 둥지를 틀고 있다. 게다가 오어사는 39만6천694㎡(12만 평)에 달하는 넓은 호수(오어지)를 바라보고 있다. 일주문과 호수까지 거리가 불과 10m도 안될 정도로 호수와 접해 있다. 큰 병풍 바위를 연상시키는 운제산(482m)을 등에 지고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는 오어사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경내에는 신라 진평왕 때 세운 고색창연한 대웅전이 남아 있어 천년 고찰임을 실감케 한다. 또 경내에는 흙이 아니라 고운 자갈이 깔려 있다. 걸을 때마다 나는 싸그락 싸그락 소리가 천년 고찰의 고요를 깨운다. 오어사에서 산위를 올려다 보면 바위절벽 위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하는 암자는 바로 자장암이다. 가파른 산길을 10여분 오르면 절벽 끝에 절묘하게 걸터앉은 자장암을 만날 수 있다.
운제산 숲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걷기에 적합하다. 특히 오어지를 가로 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호수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나온다. 고요한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Tip
대구에서 가는 길: 포항고속도로~구룡포'시청 방면~죽도시장 방면~구룡포 이정표를 따라 포항 시내와 포스코를 지난 뒤 31번 국도를 타고 20여분쯤 달리면 구룡포항이다. 오어사는 구룡포항으로 가는 길에 있다. 포스코를 지난 뒤 청림삼거리에서 양포'오천 방면으로 접어들어 오어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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