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대장암 4기 요양보호사 심연지 씨

내가 빨리 나아야 뇌성마비 아이들 돌볼텐데…

심연지(가명) 씨는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식모, 파출부 등의 일을 하며 지난 수십 년간 전국을 떠돌다 고향인 대구에 정착했지만 대장암이란 병마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심연지(가명) 씨는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식모, 파출부 등의 일을 하며 지난 수십 년간 전국을 떠돌다 고향인 대구에 정착했지만 대장암이란 병마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6일 오후 대구 달서구 한 병원. 심연지(가명'66'여) 씨의 손톱은 주황빛 봉숭아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직접 봉숭아로 물을 들인 건 아니고 문방구에서 500원 주고 봉숭아 물들이는 제품을 사서 칠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수술할 때 마취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의사 선생님은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어요."

심 씨는 곧 맞이하게 될 흰 눈이 내리면 암 덩어리로 가득 찬 몸도 씻은 듯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40년 만에 찾은 고향, 그리고 암

대구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심 씨는 스무 살 되던 해에 결혼했다. "어떻게든 밥숟가락 하나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 아는 언니의 중매로 공수부대에 근무하는 군인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한 지 3년 되던 해에 남편은 병을 얻어 불명예 제대를 했다. 당시에는 어떤 병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사람들은 '문둥병'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주변에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시부모님이 남편 몫으로 물려 준 서문시장의 가게는 누나가 차지해버렸다.

시댁 식구들도 모진 눈초리를 보냈다."시댁에선 내가 내조를 잘못해서 남편이 늘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 했어요. 결국 쫓겨났어요. 실은 아이를 못 가지니까 내쫓은 거였죠."

심 씨는 무작정 서울에 있는 큰 언니네 집으로 올라갔다. 형부가 하는 건어물 장사를 도우며 지냈다. 그러다 언니네도 경제 사정이 나빠졌고 결국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심 씨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그때부터 심 씨는 식모살이, 파출부 일을 하며 서울, 부산, 경남 등 전국을 떠돌았다. 그러다 지난 5월, 대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기뻤어요.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 대구로 돌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지난달 요양병원에서 지내던 중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워 지금 입원 중인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대장암 4기라고 했다. 대장은 물론 장기를 따라 몸 구석구석 암세포가 퍼진 상태라고 했다. 40년 동안 모진 고생을 하며 떠돌다 고향에 돌아와 얻은 것이 암덩어리였다.

◆아이들과 꽃을 바라보며

심 씨는 평생 자식을 갖지 못했던 터라 아이들을 유별히 좋아했다.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뇌성마비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뇌성마비 아이들은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눈도 못 맞추고,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을 눕히고, 우유를 먹이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지난 2009년 여름에 3개월간 실무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는 파출부 일을 하며 빠듯한 생활을 하던 중에도 일주일에 3일, 하루 4시간씩 뇌성마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심 씨는 꽃도 자식처럼 좋아했다. 이웃들이 준 화분에 국화꽃을 심어 집 앞 공터에서 길렀다. 150그루를 길러 이웃과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꽃을 피우는 국화꽃을 바라보며, 나도 하루하루 살아야 할 이유를 얻었어요."

◆주황빛 봉숭아 꽃물 닮은 희망

심 씨는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심 씨 몸에 예상보다 암이 깊숙이 퍼져 있어 수술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수술이 잘 돼 다음 치료를 기약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심 씨는 곧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고통은 감당할 수 있지만 문제는 병원비다. 심 씨에겐 방 2개짜리 주택 전세 보증금 2천만원밖에 없다. 그마저도 1천만원은 지인에게 빌렸다. 병원비는 현재 600만 원가량 밀린 상황이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다시 수술을 받으려면 병원비가 얼마나 더 들어갈지 막막하다.

그래도 심 씨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병상을 나서게 되면 다시 뇌성마비 아이들을 돌보고, 국화꽃을 길러 이웃들에게 나눠 줄 작정이에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