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들풀 1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민병도

패륜아인 아들을 몇 번이고 감싸는 부모, 저를 벤 낫을 감싸는 들풀이겠지요. 반대로 폭력만을 일삼는 남편을 견디며 아침마다 된장국을 끓여내는 여자도 저를 벤 낫을 감싸는 들풀이겠어요.

이 세상은 베는 자와 베이는 자로 나뉘지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지요. 가해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피해자의 상처를 알지 못합니다. 상처가 아픈 건 기억 때문이죠. 그것이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가 바람에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깨어나는 통증인 걸 그가 알겠어요?

그런데 베는 자의 사고가, 가해자의 속성이 우릴 더 힘들게 해요. 끝까지 자기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 땅의 주인은 분명 그런 상처받은 자, 낫에 베인 들풀인데요. 놀랍게도 상처 받은 자, 낫에 베인 자가 그 상대를 향기로 감싼다니요. 사물들의 교훈이 우릴 더욱 엄숙하게 해요. 그걸 들풀이 우리에게 가르치네요. 알겠어요. 가장 궁극의 선은 용서라는 것, 더하여 사랑이라는 것. 그걸 행하는 자 이 땅의 주인이라는 성찰, 아름답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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