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용한 시작, 강렬한 마무리 '라벨의 감동'

윤성도 교수의 대구시향 정기 연주회 감상기

지난달 11일 대구시향의 381회 정기 연주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색다른 의미가 있는 연주회였다.

대구 지역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라벨의 음악을 집중 조명하여 들려준 대구시향의 의욕적인 무대라고 할까. 연주곡목 배열에도 연주 진행에 따라 점차 강렬한 색채를 띠어 열기를 고조시키려는 곽승 마에스트로의 섬세한 의도가 감지되었다.

일반적으로 라벨을 두고 인상주의 작곡가라니 색채음악의 마술사라느니 평가하고 있지만, 그의 음악의 중심은 피아노가 기본이 된다. 그다음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그의 음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첫 곡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조용한 선율과 화음이 매우 목가적인 곡으로 흐르게 연주해야 제 맛이 나게 되어 있고 마침 부분에 잠깐 색채를 선보여주게 되는데 시향 단원들의 조금 긴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무대가 약간 협소한 듯한 이유도 한몫한 듯하다.

모차르트의 제9번 피아노 협주곡 감상 포인트는 관현악과 피아노가 같은 주제를 서로 번갈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데 있다. 이 곡은 악장마다 두 개 이상의 카덴차가 붙어있는 난곡이다. 협연자 세르게이 타라조프는 아시다시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그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때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하였다.

그의 건반 다루는 솜씨는 최상이었지만 연주 스타일은 어딘가 기교가 넘쳐 모차르트 쪽은 아닌 듯 보였다. 피아노 조율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다.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쇼팽의 연습곡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음곡 '어미 거위'도 역시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어린이를 위한 곡인 만큼, 무대 양쪽 스크린에 동화극을 주제로 한 동영상을 올려 새로운 연주 분위기를 만들려 신경을 썼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모음곡 '다프니스와 크로에'였다. 음악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관과 현, 타악기들이 모두 어우러져 이것이 인상주의 음악이고 색채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포효하듯 으르렁 울려 청중들을 압도하였다. 오디오 녹음 음향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관현악 소용돌이가 숨죽인 청중들 앞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실 이 곡은 라벨이 흥행을 위주로 하는 발레 극장주의 기호에 맞추어 보다 더 화려하게 색채를 가미하였으며 원본에는 합창 부분이 들어 있다. 곡 어딘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봄의 제전, 페트로쉬카 등의 분위기가 묻어 있다. 관 파트를 더 보충하면 더 좋은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매우 감동적인 연주였다.

계명대 동산병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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