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개밥바라기 추억

겨울 금호강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 어귀에서

모닥불 지펴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齋를 올렸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장하빈

 

다시 추운 계절이 왔네요. 우리를 떠나간 사람들은 저 바깥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보내면 참척(慘慽)이라, 천붕보다 수십 갑절 더 가혹한 비애라 합니다. 객관적으로 말하건대, 이런 현실 앞에서 시는 가혹하고 시인은 무력합니다.

어린 아들을 잃고 시인은 아픈 기억은 뱉지도 못하고 그 참혹한 고통을 피로 적셔 겨울 금호강에서 편지를 씁니다. 이 몸을 다 내어주며 간절히 호명하건대 한번만 볼 수 있겠니? 만질 수 있겠니?

연 버들 같은 자식을 여의고 그 아들을 겨우 어두운 강 저편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별로 만나야 하는 일. 얼어붙은 강어귀에서 차마 발길 돌릴 수 없어 모닥불 지펴놓고 기다리는 일. 발목이 다 얼겠다, 더 어둡기 전에 돌아와 한 번만 돌아와, 아이야.

참담한 슬픔 앞에 다가오는 폭설, 그 아이와 나를 가르는 생과 사의 경계입니다. 이제 추억에서나 만나자고 그 아이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재(齊)를 올리지 않겠어요. 그 아이가 떠나갔음을 인정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아이야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올 때까지.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