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중 한 유태인 집단이 간디에게 "폭력적 수단으로 히틀러에게 저항하는 일을 절대로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간디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유태인들은 다시 물었다. "그 결과 우리가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간디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당신들은 도덕적 우위를 아는 상태로 죽겠지요." 만약 유태인들이 간디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바보나 멍청이라는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이러한 간디의 무조건적 비폭력주의는 막스 베버가 구분한 '태도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 중 전자에 해당한다. 이는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결과는 따지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이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라고 묻는다. 바람직한 결과를 위해서라면 설령 손이 더러워지더라도 그 결과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국가의 복지를 위해 행동하며, 그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영원한 처벌을 받더라도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언명(言明)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숭고하지만 무책임하다. 후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결과를 위해 수단은 따지지 않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까. 그 대답은 매우 어렵다. 원칙을 고수할 수도, 결과만 따질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그러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도덕적 우위를 위해 우리를 죽이려는 적에게 우리의 목숨을 갖다 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기에 도덕적 우위를 목숨보다 위에 놓는 간디의 절대적 비폭력주의는 도덕적 숭고함이 아니라 도덕적 파탄이다.
반전(反戰)주의도 도그마가 되면 같은 결과를 낳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은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그 신념을 위해서 나의 생명과 재산을 뺏으려는 적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둬야 할까? '보편적인 가치인 전쟁 반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로 망명한 동성애 취향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그렇게 할 생각이 있을까. 전쟁 반대 신념만으로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이 인류의 역사다. 그런 신념보다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와 행동이 전쟁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 지금 이 땅의 젊은이와 그 아버지, 할아버지가 총을 잡은 이유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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