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양극화 시대에 부자로 사는 것은 피곤하다. 누가 부자라 하면 다들 눈빛이 달라진다. 초면의 부자에게도 혹시라도 식사라도 한번 대접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기분을 맞춰주는 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친해지려 노력한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혹시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봐, 아니면 돈이라도 빌려줄까봐.
벼락부자는 더 괴롭다. 로또 수십억원에 당첨되면 당장 이사부터 가고,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아야 한다. 로또 당첨자 중 이름까지 바꾸고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사는 이들도 적잖다. 우스갯소리로 로또 1등에 당첨되면 3가지를 바꾸는데 '집, 차 그리고 배우자(애인)'라고 한다.
가난한 이들이 주변에 많아 피곤한 대구의 알짜 부자들도 많다. 5년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제세 의원이 14개 은행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금 1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부자가 서울(64%), 부산(6.7%)에 이어 대구(3.9%)가 세 번째로 많았다. 대구에서도 수성구(198명), 달서구(127명), 북구(47명), 남구(45명), 중구(32명), 동구(21명), 서구(18명), 달성군(9명) 등의 순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대구의 알짜 부자들이 더 많이 늘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얘기는 1% 부자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5년 전 497명이라면 지금은 1천 명 가까이는 늘어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들의 별별 백태에 대해 들어봤다.
◆남편은 NF 쏘나타 VS 아내는 아우디
대구의 재벌 2세급 젊은 부자들이 노는 법이 남다르다. 부모로부터 대구 성서지역에 물려받은 땅만 100억원대에 이르는 40대 초반의 젊은 부자, 김돈왕(가명) 씨. 그는 국산 NF 쏘나타를 타고 다닌다. 몸에 걸치는 옷이나 구두 등은 값비싼 것이지만 명품 브랜드 로고가 없거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숨긴 제품만을 주로 선호한다. 하지만 부인은 부자 티가 난다. 외제차인 아우디를 몰고 다니며, 척 봐도 부자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잘입고 다니다. 누가 보면 세련미에서 너무 차이가 나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부부는 행복하다.
김 씨가 철저한 '부자 티 안 내기' 전략에 의해 행동하고, 말하는 등 대외적으로 서민 이미지로 관리하고 있어 돈 문제로 피곤한 일이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제차 타고, 명품 옷을 입고 다니니 주변에서 졸부라며 빈정거리는 사람도 많고, 돈 빌려 달라는 이들도 많았다"며 "지금은 허름한 옷차림에 국산 중고차를 타고 다니니 오히려 (밥이나 술을) 살 때보다 얻어먹을 때가 더 많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그룹 역시 젊은 알짜 부자들이다. 이들은 비밀 클럽처럼 모여서 취미 및 유흥생활을 즐긴다. 김 씨가 가입해 있는 클럽은 10여 명이 뭉친 대구 재벌 2세급 모임이다. 이들은 주로 평일에 대구 근교 골프장에서 모인다. 물론 골프장 회원권이 있어 골프장 이용료도 얼마 안 된다.
1년에 한 두 번은 회원들끼리 삼삼오오 해외로 원정 골프를 치러 나간다. 그리고 요트를 타고, 최고급 럭셔리 안마 등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하고 돌아온다. 실속있게 놀고, 또 아내나 자녀들에게 줄 고가의 선물도 잊지 않는다. 가정의 평화가 깨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한번 해외에 나갔다 오면 가족들은 좋은 선물을 받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씩은 아내가 물어본단다. '해외 나갈 때 된 것 같은데….'
이들 재벌 2세급 젊은 부자들은 부자 티 안 내기 전략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방법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으면서 조용조용 삶의 흥밋거리를 즐길 수 있는 비법공유가 이들의 화두이자 최대 관심사다.
◆'니 껀 내가, 내 껀 니가' 전략
돈을 쓸 때도 명분이 서면 폼이 난다. 특히 돈이 있는 알짜 부자들은 'Give and Take'를 절묘하게 잘하면서, 서로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한번 도움을 받았으면 반드시 그만큼의 액수나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는 센스가 필수다. 안 그러면 알짜 부자들 사이에선 욕을 먹는다.
이들만의 사례 하나 소개한다. A부자, "친구야! 내 지금 경산에서 삼겹살 먹고 있는데, 여기 계산 좀 해라! 빨리 택시 타고 와!" B부자, "아! 바쁜데…. 그래 알았다. 1시간 내로 갈게!" B부자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대구에서 택시를 타고 경산으로 향한다. 도착하자 짐작했던 이상의 상황이 펼쳐졌다. A부자가 초교 동창생들 50여 명을 불러놓고 삼겹살 100인 분을 먹어치웠다. A부자, "왔네. 여러분! 내 친구 돈왕입니다. 계산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박수 한번 쳐 주십시오." B부자, (당황한 듯한 표정을 연기하며)"제가 쏘겠습니다. 더 시켜 드십시오."
정확하게 보름 뒤, B부자는 고급 일식집에서 대학교 때 친구 10여 명과 만찬을 즐기면서 A부자를 불렀다. A부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달려와 B부자의 위신이 제대로 서도록 화끈하게 쏘았다. 금액은 전에 계산했던 삼겹살 가격에 맞먹을 정도.
비싼 양주를 마실 때도 부자들은 잘 주고받는다. C부자, "친구야! 미안하다. 여기 어디 주점인데 주인 바꿔줄게. 텔레뱅킹으로 돈 좀 부쳐줘!" D부자, "아! 임마 또 술 많이 먹었네! 알았다. 알았다." 한 달 내에 반대상황은 또 있기 마련. D부자는 유흥주점에서 만취상태로 C부자에게 술값 대납(?)을 부탁할 수 있는 티켓을 받은 것이다.
위 사례들은 젊은 부자들이 서로를 위해 쏘는 전형적인 방법들이다. 한 번 쏘면, 되받아 쏘는 식이다. 자신을 위해 쓰기보다 이왕이면 남을 위해 사용해 주는 것이다.
부모가 가진 주식을 양도받은 젊은 부자 전현금(가명'43) 씨는 "지갑에 현금 두둑하게 넣어 다니거나 어딜가나 펑펑 쓰는 습관이 잘못 들면 돈을 쓰고도 좋은 소리를 못듣게 된다"며 "어느 정도 경제력이 되는 부자들은 서로를 잘 이용하면 돈을 쓸 때도 주변에서 보기에 모양새가 좋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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