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불운한 장군 아서 퍼시벌

"예스냐 노냐?" 1942년 2월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가 "항복조건을 협상하고 싶다"고 한 영국군 사령관 아서 퍼시벌(1887~1966)을 이렇게 윽박질렀다. 잔말 말고 항복문서에 서명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상징하듯 싱가포르 함락은 영국군 사상 최대의 치욕이었다. 싱가포르 방어군 8만여 명을 포함, 말레이 주둔 영국 연방군 13만6천 명이 항복했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일시에 항복한 것은 영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하다.

1887년 오늘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장교양성 과정을 거쳐 1차대전에 참전한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해 중장까지 올랐다. 싱가포르 함락 당시 그의 병력은 8만8천 명에 달했지만 3만6천 명의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물과 석유, 탄약 등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막느라 혼이 빠진 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도 물자 부족이 심각했다. 그가 좀 더 투지를 보였다면 싱가포르를 지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야마시타도 인정했다. 종전 후 그는 자신의 전략이 "효과있는 허세였다"고 털어놨다. 죽기로 싸우면 이길 수 있었지만 일본군의 허세에 겁부터 먹은 '새가슴'이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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