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심사평

삶의 희망·절망을 소설 속 이야기로 잘 살려, 짜임새 면에서 가장 완성도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김인숙 소설가
김인숙 소설가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유미숙의 '산티아고 가는 길', 은소정의 '로스팔로스를 떠나' , 심강우의 '구멍', 이에렌의 '살인자의 몽타쥬'를 주목해 읽었다. 소설의 품격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네 작품은 모두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출생과 성장의 비밀을 둘러싼, 자신은 결코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슬픈 인생의 원죄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어머니의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중 화자가 어머니, 혹은 자신에 대한 용서에 이르는 결말이 아쉬웠다. '구멍'은 치밀한 구성과 묘사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문장도 안정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삶이 통째로 구멍에 빠져 그 궤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력적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는 있으나 짧은 단편 소설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는 사람마저 그 이야기를 쫓아가기가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규격에 맞게 이야기의 크기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살인자의 몽타쥬'는 도입부에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법낙태전문의사가 생명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서술이 심리적인 기법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구성이기는 했으나 작위적인 설정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독자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기 전에 작가의 주장이 먼저 앞섰다. 그 주장이 특히 새롭지도 않다는 느낌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로스팔로스를 떠나'는 소설의 짜임새 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자는 미니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를 운영하며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벌어 살아가는 사람이고 여자는 보도방에서 몸을 파는 사람이다. 바이킹들은 왜 바다로 나갔을까, 작가는 묻는다. 바다로 나가기 전에 논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또 묻는다. 어쩌면 거친 바다의 흔들림, 출렁임이 그들을 그곳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대답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장점은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또 바닥에 처박힌 삶의 어둠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희망은 고작 미니 바이킹이 오를 수 있는 높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서 그들이 외치는 '높이, 더 높이!'는 허무하게까지 여겨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페달을 돌리고 노를 젓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자기 목소리가 아닌 소설 속의 이야기로 이 모든 것들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높이 산다. 이 작가의 앞날을 기대한다.

복거일'김인숙

예심:이연주 노명옥

본심:복거일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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