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영화] EBS 세계의 명화 '와호장룡' 31일 오후 11시 40분

영화의 줄거리와 구성은 기존 무술영화와 큰 차별점이 없지만 주제의식은 다르다. 기존 무술영화들이 협객들의 의리와 우정, 복수, 권선징악을 그리는 반면 이 작품에선 도가적인 가르침을 설파한다. '주먹을 꽉 쥐면 그 안에 아무 것도 없지만, 주먹을 놓으면 그 안에 모든 게 있다'는 무당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모백은 득도의 직전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내공의 소유자인 동시에, 싸움의 허무함을 깨닫고 400년을 이어온 명검을 포기할 정도로 미련에 대한 집착을 버린 무림 최고수이다.

하지만 죽은 친구의 약혼녀이자인 수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스승을 살해한 원수에 대한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떨쳐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반면, 소룡은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는 운명을 타고 났지만, 비극적인 선택을 하면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홍콩의 무술영화는 아시아인들을 열광케 했지만 결코 오락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오락영화로만 치부되던 무술영화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홍콩 영화인들의 오랜 노하우에 중국과 할리우드의 자본이 더해진 '와호장룡'의 등장은 기존 무술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무려 4개 부분을 수상하며 무술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 '와호장룡'의 환상적인 액션과 주제의식을 넘어설 만한 작품은 나오지 못했다.

영화의 성공에는 중국계 미국인 이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대만에서 이 영화의 원작 무협소설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하는데, 원작은 1920년대에 나온 왕두루의 무협소설이다. 감독의 연출력 이상으로 영화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환상적인 액션씬은 '매트릭스'로 이미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원화평이 진두지휘했다. 러닝타임 120분.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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