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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궁리(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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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

배한봉

용추계곡 숲길에서 내 운동화 한 짝만 한 어린 산토끼와 만났다

좁은 길 한 가운데 앉아 나를 바라보는 토끼

나도 꼼짝 못하고 토끼만 바라보는 시간

어린 토끼가 가던 길 어서 마저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

가볍게 바람을 쐰 뒤 얼른 돌아가야 하는, 내 사정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보드랍게 토끼의 잿빛 털을 쓰다듬고 있는,

바람의 저 천만 개 가느다란 손가락

허공을 유영하는 멸치 떼 같은 은빛 바람의 손가락

지상의 파란을 모두 기억하는 바람도 어린 토끼 놀랄까 봐 그런 자세로 한참을 궁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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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서정적인 교감을 중시하는 배한봉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이 용추계곡에서 어린 산토끼와 마주쳤군요. 이 마주침은 몸과 몸의 만남이며 동시에 마음과 마음의 만남입니다. 시에서는 이를 '서정성'이라 부르지요.

서정성이란 세계와 나의 평화롭고도 평등한 만남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상대에 대한 따스한 배려이지요. 제목 '궁리'(窮理)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성리학에서 궁리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이치로써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니까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산토끼와 시인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궁리 중입니다. 바람도 이 둘을 어찌해야 좋을지 토끼의 잿빛털을 쓰다듬으며 궁리 중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서로를 해치려는 음흉한 궁리로 늘 '파란' 속이라 그런지, 시인과 토끼와 바람이 서로들 제 마음의 이치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이런 궁리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기만 합니다.

시인, 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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