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키운 것은 동네도서관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말이다. 국내에서도 조기 독서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도서관을 향하는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요즘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다. 체험, 놀이를 겸해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성인들을 위한 평생학습강좌도 수시로 열린다. 동네 도서관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문화활동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공공도서관들이 인기리에 운영 중인 프로그램들을 살펴봤다.
◆도서관에서 배우는 과학, 영어
"직접 실험을 해보니 훨씬 이해가 잘 되어요."
허연주(달성초등학교 5학년) 양은 대구시립북부도서관이 9일부터 운영 중인 '과학교실'에 참가하고 있다. 이 도서관이 마련한 6개 겨울방학 특강 중 하나로 월~금요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좌다.
"학교에선 과학 실험을 해보기 어렵잖아요. 여기에선 매일 실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도서관에 미술 특강이 생기면 꼭 참가할래요."
11일 이 강좌에서 진행된 실험 주제는 '별이 왜 반짝반짝 빛날까'. 초교 4, 5학년 학생 10여 명 앞에 선 강사 최정수 씨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빛나는 것은 항성, 항성의 빛을 반사해 빛나는 것은 행성과 위성'이라고 알려줬다.
아이들은 강사의 말에 따라 투명 플라스틱 컵을 검은 도화지 위에 올려두고 컵 바닥 모양에 맞춰 도화지를 잘랐다.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등 제각각 알고 있는 별자리를 도화지에 그린 뒤 송곳으로 별 위치에 구멍을 내 컵 바닥에 붙였다. 이어 나무 막대로 컵 속을 휘저은 후 건전지를 연결한 꼬마전구 위에 두고 관찰했다. 꼬마전구는 별, 검은 도화지는 밤하늘, 컵 속의 물은 대기권이고 구멍을 통해 나오는 빛이 별빛인 셈.
"여러분, 컵 속을 보면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흔들려 보이죠? 이처럼 대기가 움직여 별빛이 산란되기 때문에 사람이 보기엔 별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겁니다."
김제희(칠성초교 4학년) 군은 교재에 나오는 실험 과정, 결과를 묻는 문제를 막힘없이 풀었다. "평소 과학자가 꿈이어서 이 수업이 신나요. 실험을 계속 하다 보니 집중도 더 잘 되고요."
이튿날 오후 4시 찾아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2층 책여울 강의실은 6, 7살 꼬마들로 활기가 넘쳤다. 다음달 2월 말까지 운영되는 '어린이 영어스토리텔링' 강좌에 참가한 아이들이다.
강사 전천경 씨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아이들은 전 씨가 비행기, 자전거 등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자 영어로 답을 말하겠다며 다들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림책을 읽을 때는 더욱 신바람을 냈다. 전 씨를 따라 비행기, 버스 소리를 흉내내고 간단한 영어 동요도 따라 불렀다.
강의실 복도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민정(37'여) 씨는 이 강좌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인기 강좌여서 수강생 모집 첫날 새벽부터 도서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억지로 영어를 외우게 하지 않고 놀이처럼 가르쳐 주니 딸아이가 즐거워합니다. 다음 번 강좌 때도 꼭 참가시킬 생각이에요."
◆시립중앙도서관, NIE 강좌
12일 오전 10시 찾은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제4강좌실. 이 도서관이 10일부터 14일까지 운영한 6개 겨울방학 특강 중 '입학사정관제 대비 초등 NIE(Newspaper In Education) 교실' 강좌가 한창이었다. 대구 각지에서 모인 초교 5, 6학년 학생 10여 명이 속속 자리에 앉았다.
정지은(유천초등학교 5학년) 양은 한 살 터울 동생과 함께 달성군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 강좌를 들으러 왔다. 동생은 옆 교실에서 '창의력을 키우는 독서논술' 강좌 수강생. 지은이는 오후 2시에 진행되는 '디베이트 교실'까지 두 개 강좌를 듣고 있었다.
"점심시간엔 엄마가 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어요. 그리곤 다음 강좌가 시작될 때까지 열람실에서 책을 보죠. 책을 좋아해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강좌가 시작되자 강사 류순희 씨가 우선 지난시간 내준 숙제부터 점검했다. 신문기사 중 하나를 골라준 뒤 모르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뜻까지 적고 기사를 읽은 감상을 쓰는 '신문 일기'가 숙제.
"단어의 한자 표현까지 옮겨 적은 친구도 있네요. 잘했어요. 단어를 많이 알면 여러분이 나중에 논술 공부를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꾸준히 신문 일기를 쓰세요."
다음은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카툰 중 학교폭력을 다룬 작품에 대해 비판한 기사를 읽어 볼 차례. 아이들은 번갈아 한 단락씩 낭독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기사를 읽은 후에는 느낌과 해결 방안을 간단히 적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저기서 실제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걸 본 적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고, '당하는 아이가 불쌍하다'부터 '그냥 별 느낌이 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이들은 '고민상자를 만들어 의견을 모은 뒤 토론하자' '친구를 자주 때리는 아이들은 특별수업을 받게 하자'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 등 제 나름대로 다양한 해결책을 내놨다.
뒤이어 신문을 읽으며 자신의 진로를 그려보는 진로탐색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강사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은 신문을 한 장씩 넘기며 기자부터 국회의원, 연예인, 축구선수까지 기사 속에서 언급되는 직업을 하나하나 꼽아 나갔고, 그중 관심 있는 직업 다섯 개를 골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적은 뒤 발표했다.
이미 다른 도서관에서 여는 방학 특강에 참가한 적이 있다는 이다혜(동성초교 5학년) 양. 책도 많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도서관에 오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다만 진로 탐색 때만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꿈이 너무 많아 쉽게 정하지 못하겠어요. 기자도 되고 싶고 아나운서, 피아니스트에도 관심이 많아요. 자꾸 고민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지겠죠?"
◆도서관은 지역 문화공간
'도서관=책만 보는 곳'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다. 도서관을 찾으면 취학 전 아이들부터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노년층을 위한 것까지 다양한 특별강좌들이 마련돼 있다. 특히 대부분은 수업료를 받지 않아 경제적 부담도 없다. 이용객들에겐 어떤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을까.
도서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경우 체험, 실습이 포함된 강좌가 인기다. 북부도서관이 올해 초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신설한 강좌는 9일부터 25일까지 운영하는 '신나는 아동미술'. 그림을 그리고 종이접기 등 통합미술 프로그램인데 참가 신청을 받자마자 20명 정원을 채웠다.
각 도서관에서 개설한 생활사진, 학부모들을 위한 초등역사논술 프로그램 등은 성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강좌다. 노년층은 풍수지리, 주역, 한문 등 전통문화 강좌에 꾸준한 관심을 보내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것은 외국어 관련 강좌.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일찍부터 접하게 해주려는 욕구가 크다. 또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장년층도 현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편리하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부도서관 배상갑 관장은 "1년에 한 번 이용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예산과 운영 방법 등을 검토해 강좌 신설 여부를 결정한다"며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도 점점 다양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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