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0일 저녁 대구 서구 평리동 '따신밥 한그릇' 식당 . 식당 이름처럼 따뜻한 차례상이 식당 안에 차려졌다. 5년째 이어진 설맞이 차례상은 대구쪽방상담소가 가족과 친척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이날 모인 쪽방촌 주민 20명은 '희망회' 소속 회원들. 희망회는 2010년 쪽방 주민들이 자활의지를 다지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회원 20명이 매달 1만~2만원씩 회비를 내고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하며 대화도 나눈다. 희망회 회원인 김상철(가명'52) 씨는 "우리는 기댈 가족도 없고, 급할 때 돈 빌릴 친구도 없는데 희망회는 가족 같은 존재다"고 했다.
대구지역 쪽방 주민들이 만든 '희망회'가 빈곤의 그늘에서 작은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 희망회에 쌓이는 매달 1인당 1만원의 돈은 자활의 거름으로, 회원들끼리는 서로 가족같이 의지하며 보듬게 하는 매개체다.
희망회의 첫 번째 역할은 '작은 은행'이다. 특정 단체나 기업에서 자금을 지원해 빈곤층에 대출을 지원하는 '마이크로 크레딧'과 달리 희망회는 쪽방 주민들이 스스로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모임이어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 200만원 남짓한 회비로 운영되는 희망회는 자신이 낸 회비만큼만 돈을 빌릴 수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회비지만 지난해 의료비와 생활비 등으로 총 3명이 대출을 받았고 2명이 전액 상환했다.
변민섭(가명'47'달서구 송현동) 씨도 지난달 희망회에서 생활비로 10만원을 빌렸다. 비수급권자인 변 씨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최근 일감이 없어 쌀을 살 돈이 없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돈 빌릴 데가 어디 있습니까? 희망회가 우리한테 은행이지요. 다음 달까지 꼭 갚을 겁니다."
희망회는 외로운 쪽방 주민들에게 심리적인 울타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노숙 생활까지 경험한 최현철(가명'71) 씨에게 희망회는 '따뜻한 집' 같은 존재다.
쪽방 주민들 중에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상처 때문에 대다수 주민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서툴다. "내가 희망회에 가입한 건 돈 때문이 아니라 모여서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야. 혼자 살면서 아플 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희망회 사람들은 서로 어디가 아픈지 걱정하고 병원비도 보태준다니까. 옆에 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
희망회의 모델이 된 것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하 사랑방마을)이다. 2010년 생긴 이 조합은 회원들이 소액의 회비를 내고 출자금을 꾸려 긴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소액 대출이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대구 쪽방촌 주민들은 지난해 동자동 사랑방마을과 영등포 쪽방촌의 '해보자 모임' 회원들을 만나 조언을 받고 희망회를 결성했다.
앞으로 희망회는 재활용센터를 운영할 계획도 구상 중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힘든 쪽방 주민들이 파지나 고물을 수집해 고정적인 수입을 얻은 뒤 탈수급자가 되고 빈곤을 극복하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대구쪽방상담소 장민철 사무국장은 "희망회 회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비를 쪼개 회비를 내고 생활하고 있지만 재활용센터가 생기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서 주민들이 연대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다"며 "지금은 출자금 규모도 작고 회원도 많지 않아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이 제한돼 있지만 이 작은 모임이 쪽방 주민들에게 희망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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