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니하오 통신] (63)세화(歲畵)

"미신적 의미 넘어 예술로 승화"

생동하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이틀 후면 입춘이다. 이 때가 되면 문 앞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이란 글을 써 대문에 큼지막이 붙이곤 한다.

중국에도 우리와 유사한 풍습이 있다. 중국인들은 그림을 그려 붙이곤 하는데 바로 세화(歲畵'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다.

세화는 중국 특유의 민간 예술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문신(門神)으로부터 비롯됐다. 세화는 낭만적인 민간 회화 형식으로 중국인의 아름다운 염원을 구현해 민간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은 설을 쇨 때 대문에 새해의 길운과 행복을 기원하는 세화를 붙이곤 한다. 설날에 붙이는 세화는 그 이듬해 설을 맞아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 그래서 연화(年畵)로 불리기도 한다.

세화는 색채가 뚜렷하고 경사스러운 느낌을 주며 대부분 길함과 즐거움, 기쁨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표현한다. 세화에는 간결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사람들의 주관적인 염원을 직접 보여준다. 세화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성도'(壽星圖), '송학연년'(松鶴延年), 풍작을 기원하는 '춘우도'(春牛圖), '오곡풍등'(五谷豊登), 행복을 상징하는 '오복임문'(五福臨門) 등이 있다.

세화의 역사는 2천여 년 전 한(漢)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화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진다. 먼 옛날, 신도와 욱루라고 하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전문적으로 귀신을 감독하는 사람이었다. 두 형제는 귀신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발견하면 그 귀신을 잡아 호랑이에게 먹였기에 귀신들은 신도와 욱루를 아주 두려워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과 창문에 신도와 욱루의 그림을 붙여 귀신을 막았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 당(唐)나라 때 황제였던 이세민은 늘 악몽을 꾸고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의 두 장군인 진숙보(秦叔寶)와 위지공(尉遲恭)이 날이 새도록 문밖에서 지켜주는 바람에 그때부터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이후 이세민은 화가를 시켜 이 두 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문에 붙이고 문신이라 불렀다.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가 점차 민간에 전해져 다양한 내용의 문화(門畵)로 발전하게 됐다.

송(宋)나라 때 목판인쇄술을 세화 제작에 도입해 세화가 대량 생산'판매되기 시작했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주제 또한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 붙이는 세화를 세부적으로 나누기까지 했으며, 지역적 특색을 갖춘 4대 민간 목판세화 생산지까지 등장했다.

세화는 설날이 왔음을 알리는 장식품을 넘어 문화 전파, 도덕 교육, 신앙 전승의 예술품으로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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