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한 분야에 대한 깊이보다는 다양한 곳에 대한 폭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봐요. 날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것, 그 핵심과 본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사회과학적 소양과 버무려진다면, 그게 좋은 광고 아닐까요?"
한파경보에다 전국적인 폭설로 난리법석이던 지난달 31일. 한화그룹의 광고회사 한컴(Hancomm) 박동국(57) 전무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창문을 열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몇 시간째 쏟아지고 있는 폭설 소식도 모르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옆에서 소를 잡아도 모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터였다.
1960, 70년대 대구가 미술계를 주름잡던 시절, 각종 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소년은 부모님의 반대로 붓을 꺾었다. 수학1정석과 정통종합영어 한 권씩을 들고 은해사, 부암사 등 절간을 전전하며 재수생활을 한 그는 신문방송학도가 되어 기자직을 준비했지만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펜을 꺾었다. 돌고 돌아 동아제약 판매촉진부 카피라이터가 그가 잡은 운명이었다. '환절기 오계절 감기약 판피린'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기자는 그 카피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광고주가 직접 제작하던 시스템이 광고대행사로 이동하면서 제일기획으로 옮겼습니다. 당시에는 연합광고나 오리콤 등이 훨씬 잘 나가는 회사여서 다들 '왜 하필 거기냐'고 말렸지요. 하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빡시게'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AE(광고기획 총책임자)로서 광고인생을 새출발했다. 옮긴 그해 제일기획 내 최우수 AE로 뽑혔다. 1993년에는 삼성의 '신경영' 방침에 맞춰 최연소 매체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대형 광고주인 제일제당 광고를 맡았다. 이후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총괄팀장으로 명성을 떨쳤고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광고대상까지 받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도 그가 참여한 제일기획 작품이다.
"광고주의 인하우스(in House) 시스템 광고는 제품의 판매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광고주가 만드는 것이니까 광고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광고대행사는 소비자보다는 광고주를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둘을 모두 경험했고 제 광고인생에 좋은 밑천이 됐습니다."
그는 늘 일부러 무엇인가를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카피라이터가 소설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창의력의 순도 차원에서 그 행위는 표절입니다." 이 한마디는 그의 프로근성을 대변했다. "사람에게 100촉의 집중력이 있다면 광고는 20촉도 안 되는 집중력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장면일 뿐입니다. 그러니 핵심을 보여줘야죠." 그는 설명하는 광고를 혐오한다. "좋은 글이지만 제품은 안 팔리는 광고는 뭘까요? 엉터리죠."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카피문구처럼 귀에 와 박혔다.
한컴으로 옮긴 지 9년, 광고쟁이로 만 31년을 살았다. '포장의 기술자'지만 그의 포장에는 진실함이 있다. "광고를 하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요? 사회과학적 시각을 가져라. 뭉뚱그려 보지 말고 본질과 핵심을 보라."
대구 출신인 박 전무는 사대부중'고,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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