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찰청장님 봉암사 가는길, 눈 다 치워요∼"

도로 치우던 제설차량 급파…빙판길 시민들 불편 아우성

이만희 경북경찰청장이 봉암사를 방문하기 전 미리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량. 이 길은 평소 통행량이 적어 시내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이 더 시급했다. 고도현기자
이만희 경북경찰청장이 봉암사를 방문하기 전 미리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량. 이 길은 평소 통행량이 적어 시내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이 더 시급했다. 고도현기자

"경북경찰청장님의 봉암사 가는 길이 미끄러우니 제설작업을 부탁합니다"(경찰 관계자) "그쪽은 산간지역이라서 좀..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서..(문경시 관계자) "청장님 안전과 예우차원이니까 성의를 보여주세요"(경찰 관계자)

2일 이만희 경북경찰청장의 문경경찰서와 봉암사 방문을 앞두고 1일 문경경찰서와 문경시 관계자가 나눈 대화의 요지다.

최근 폭설로 도심 전체가 빙판길로 변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2일 문경에서는 주요 제설차량이 하루 동안 이만희 경북경찰청장 차량의 이동구간에 집중돼 주민 불편이 가중됐다.

이 청장은 치안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이날 오전 상주경찰서를 방문한 뒤 오후 1시30분쯤 문경경찰서를 찾았다.

치안현황을 보고받은 이 청장은 일행과 함께 이날 오후 2시 20분쯤 경찰서에서 31㎞ 떨어진 봉암사로 향했다. 봉암사는 1년 중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개방하는 사찰이나 이날 경찰의 사전 요구로 인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민들이 폭설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에도 불구하고 이 청장의 봉암사 가는 길에 대해 우선적으로 제설작업을 해 줄 것을 문경시에 요구했다.

문경시는 이날 오전 시청에 2대밖에 없는 15t 대형제설차량 1대와 도청에서 지원 나온 15t 제설차량까지 봉암사 쪽으로 급파해 제설작업을 벌였다.

이 제설차량은 문경경찰서에서 봉암사까지 전 구간을 통과하면서 특히 가은읍 파출소에서 봉암사 입구 산길까지 약 10㎞ 구간에 집중적으로 모래를 뿌리는 등 당초 예정된 작업구간을 벗어나 긴급 제설작업을 한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이날 하루 동안 도심과 국도변 빙판길 제설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폭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결빙구간 해결 요구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문경시청 관계자는 "폭설이 왔을 때는 전 공무원들이 통행량이 많은 곳부터 제설작업을 하지만 그나마 인력과 장비부족으로 역부족이다. 봉암사는 산간지역인데다 '부처님 오신 날'만 개방하는 곳으로 통행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긴급제설작업 구간이 아니지만 경찰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주민 고모(61) 씨는 "가뜩이나 제설작업으로 정신없는 문경시에 경찰이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관장에 대한 예우를 위해 제설작업을 요구한 행태는 지탄받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만희 경북경찰청장은 "봉암사 방문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경경찰서의 권유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문경경찰서 관계자는 "봉암사 가기 전인 오전에 미리 제설작업을 벌였다는 것은 청장님은 모르는 일이다"고 했다.

문경'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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