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는 인문학도들과 문학도들이 모인 한 소박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의 논제는 미국 어느 정치평론지에 실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를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대할까, 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일어난 월스트리트 시위 '운동'은 이후 세계의 1천여 개 도시로 확산되었고 겨울이 되면서 소강 상태를 보이는 듯했으나, 이번 주엔 미국 오클랜드에서 거의 최대 규모라 할 만한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충분히 알려진 것처럼 금융계의 문제와 소득의 양극화 등 현행 자본주의에 대한 '99%'의 분노가 실려 있다는 현장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은 월가 시위가 현재의 불평등,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같은 중요한 문제를 일거에 노출시켰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시위자들에게 잠복된 반(反)자본주의적 요소를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소 어처구니없게도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들었다. 예전에도 읽은 바 있지만 소설은 거의 새로웠다. "사람은 소설을 읽을 수 없다. 다만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라는 작가 나보코프의 말처럼 이번 독법(讀法)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순수하며 동시에 얼마나 탐욕적인가에 맞추어졌다.
소설의 주인공 개츠비는 돈 한 푼 없는 군인인데 아름다운 처녀 데이지를 만나 사랑을 불태운다. '난초' 같은 향기를 지닌 데이지는 안타깝게도 돈을 좋아하는 유쾌한 속물 근성의 여자였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차지하려고 억척같이 돈을 모았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그녀와 만나기 위해 날마다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이윽고 그녀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개츠비는, 마지막 고비에서 갈등하는 데이지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 죽음에 이르고 만다. 만사 헛일이 되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꿈의 갸륵함과 욕망의 가열함에 진저리를 쳤다. 누구한테든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사악한 꿈이란 있을 수 없으며, 동시에 그 꿈은 현실의 계곡을 지나면서 저열한 탐욕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하여 자신을 거기까지 닿게 한 동력(動力)인 꿈마저 궤멸시켜버린다. 참으로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인간의 꿈이 그런 도정을 밟을 것이다.
여기서 '꿈'을 정치사회학 등에서 말하는 '이론'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꿈이 현실을 겪으면서 변질되는 것처럼 모든 이론도 현실을 통과할 때 원형대로 자신을 보존할 수 없다. 꿈이 궤멸되는 것처럼 이론도 부서진다. 부서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현실에서 유리된, 혹은 현실을 억압하는 도그마(dogma)가 될지 모른다.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로까지 불신을 받는 신자유주의도 사실은 정부 주도형 경제가 갖는 비효율성을 개선하자는 데서 나왔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어서 세세히 모르지만 1970년대 세계 경제의 침체가 각국 정부의 지나친 관여로 기업의 창의성이 저하되고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었다고 한다. 서방 정부는 장기적인 경기 저하를 막기 위해 정부 관여를 줄여나갔고 국유기업도 민간에 이전되었다. 우리나라도 포항제철이나 KT 같은 공기업들이 줄줄이 민영화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활성화의 꿈은 이제 현실의 난폭한 욕망에 의해 불평등 체제라는 격한 반발을 사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도, 당시 균등을 관념적으로 외치는 듯이 보였던 노무현 정권에 비해 얼마나 현실적이었던가. 부유하는 말 잔치 대신에 실제의 성장이 이루어지며, 그 풍요의 과실(果實)이 곳곳에 분배될 거라고 믿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민해 보였던 그 꿈 역시 현실의 계곡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더 가지겠다는 가진 자의 욕망을 꺾을 수 없었을뿐더러 처방 시기도 놓쳤다. 공교롭게도 이즘에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현행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무참할 지경이 되었다.
다시, 소설에서 개츠비의 '꿈'을 일그러지게 하는 도시의 정경을 바라본다.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많은 이론가들은 자신의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꿈의 과정이, 꿈의 지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풍요조차 돈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소설가
필자는 지금까지 2년을 좀 넘게 시사와 관련된 글을 써왔습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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