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형마트 앞 상가 건물 1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세 명이 인사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나같이 두 손을 배꼽 위에 모았다. 은행 VIP룸을 연상케 했다. 한 여직원이 처음 들렀느냐고 물었고 이내 '고객님이 사시는 가격'이라 적힌 종이를 건넸다. 안내문에는 백화점과 제화 상품권의 시세가 적혀 있었다.
"요즘은 명절 뒤라 상품권 매물이 많습니다. 예약을 하시면 억 단위로도 구입이 가능하십니다."
연말과 설 연휴가 지난 뒤 '상품권 깡' 시장이 바빠지고 있다.
명절 선물용으로 풀린 상품권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주변에 위치한 '깡 업소'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추석이나 설 명절 때 풀리는 상품권 규모는 500억~7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규모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대구 지역 내 백화점과 대형마트별로 명절 상품권 판매액이 50억에서 200억원에 이르고 있다"며 "이 중 두 달 내에 회수되는 상품권은 절반 정도"라고 밝혔다.
결국 나머지 상품권은 장롱 속에 보관되고 있고 쓸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다 현금 융통으로 결심한 '고심형'들이 명절 1, 2주가 지난 뒤 상품권을 되팔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상품권 교환업소에는 모자를 눌러 쓴 중년의 여성에서부터 양복 차림의 30대 남성까지 쉴 새 없이 문턱을 넘나들었다.
직장인 김모(29) 씨는 "설 전 지인에게 10만원짜리 상품권 3장을 받았는데 자취하느라 쓸 일도 없고 생활비도 아낄 겸 팔 생각에 들렀다"고 말했다.
소폭이지만 유통량이나 인기도에 따라 가격 등락도 있고 종류별로 엄연한 서열이 존재한다.
상품권 교환 업소 관계자는 "현대와 롯데, 대구 백화점의 10만원권은 9만6천원대에 구입할 수 있으며 고객이 팔 때는 이보다 1천원 싸다"며 "물량이 많은 명절 전후는 매매 가격이 1천~2천원 낮아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통 시장 상품권인 온누리 상품권도 깡 시장에 나오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 기관과 대기업 등에서 몇 년 전부터 온누리 상품권을 대량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권 깡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형 업소도 생겨나고 있다. 복권방, 구두방 등에서 소액으로 깡을 하는 것과 달리 분점을 내고 창구 여직원까지 두는 등 점점 조직화되고 있는 것.
업계 관계자는 "수억원어치 상품권을 한번에 살 수도 되팔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상품권 업소가 생겨나고 언론 홍보를 통해 손님을 모으고 있는 곳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품권 깡은 자칫 유통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상품권으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한 뒤 소매점 등에 차떼기로 넘기는 이들이 등장했고 일반 주부들도 할인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쇼핑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유통 업체별로 상품권 판매 실적 경쟁이 심해지면서 유통량이 해마다 늘고 있다"며 "하지만 소비량을 넘는 상품권 판매는 결국 유통 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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