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일상에서 만난 스승

디리링~. 페이스북 메시지 도착 알림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입니다. 누굴까. 한 시인이 보낸 메시지입니다. "임 선생, 어제 누가 나더러 유쾌한 사람이라더군. 유쾌하다는 단어에 지배받아 하루가 행복했어. 오늘은 임 선생이 유쾌한 하루가 되길 바라요."

'유쾌하다'는 단어에 '지배받다'니…. 참으로 시인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시인이 전해준 행복 바이러스 덕에 저는 그날 하루가 즐거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용하는 어휘에 따라 사고와 존재가 결정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과 백화점에 갔습니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쇼핑을 하는 일은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닙니다. 쇼핑보다는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 돌보기에 지쳐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데 아이는 그새를 못 참고 정수기를 향해 돌진하듯 달려갔습니다.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아이를 잡는데 옆자리 앉아계시던 노신사 한 분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셨습니다. "아이한테 '안 돼'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다른 표현을 한번 찾아보세요. 어린아이에게 부정적 어휘를 쓰는 것은 좋지 않아요." 순간 머리가 휑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 돼' 대신 '이쪽으로 와봐. 저쪽에는 뭐가 있을까' 등의 말로 아이를 유도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안 돼, 하지 마, 그만.' 생각해 보면 그동안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내뱉은 부정적 어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시인의 말처럼 '말'에 사고가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면 번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어휘를 잘 골라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말은 영혼에 스며드는 물방울이라고도 하지요. 일상적으로 부정적인 단어들을 내뱉은 것은 아이와 나의 영혼에 대한 폭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 매일신문에 실린 '대리운전기사 체험기' 기사를 읽다 보니 지난 연말의 한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한적한 주택가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가진 후 대리운전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초행길에 찾기 어려운 위치였던지라 기사 아저씨가 근처에서 30분 이상을 헤매며 수차례 통화를 반복한 후에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목적지도 산 아래 조용한 동네라서 다음 '콜'을 받기 힘든 곳이었으니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낯선 아저씨에게 차를 맡기고 동승해 집까지 가는 것도 찜찜한데 짜증까지 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밝은 표정으로 차에 오른 아저씨는 '이렇게라도 만나서 다행'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저씨는 '이런 날이 있으면 운 좋게 연달아서 좋은 콜을 받을 때도 있으니 본전'이라고 하시더군요. 슬슬 마음이 놓이고 조금씩 취재 본능도 일기 시작하면서 한두 마디 말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술 마신 사람들이 손님이라 별사람 다 있을 텐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배웁니다. 요즘은 술을 과하게 마신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다시 만날 확률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제게 부담 없이 속마음을 터놓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저씨는 목적지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어려운 경제 이야기에서부터 소소한 가정사까지 다양한 화제가 오간다며, 연배가 있는 손님에게는 인생을 배우고, 더 젊은 손님을 만나면 한 수 인생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보람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만화가 아베 여로의 '심야식당'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문을 여는 이 식당에는 일반인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손님입니다. 술집 종업원부터 스트리퍼 댄서, 야쿠자에 이르기까지 남들과 다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감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씨 좋은 식당의 주인은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원하는 메뉴를 척척 만들어주는 것으로 그들의 인생을 보듬어 줍니다. 심야식당의 주인장처럼 제가 만난 대리운전기사 아저씨 또한 자의로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 운전을 맡기는 사람들의 인생을 보듬어 주었을 겁니다.

몇 해 전 '시크릿'의 열풍에 이어 근래에는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자기 계발법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시크릿'이나 '꿈꾸는 다락방'의 공통적인 명제는 'R=VD' 즉, 생생하게(vivid) 꿈을 꾸면 (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어 봄 직한 명제 아니겠습니까. '생생한 꿈'에 전제하는 것이 '긍정적 사고'이며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 긍정적인 말과 행동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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