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영직(表正影直)이란 말이 있다. 당나라 군서치요(群書治要)란 책에는 '겉(모양)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고(表正則影直), 거푸집이 바르면 그릇도 좋다(范端則器良)'는 글이 있다. 우리 기록엔 조선조 영조 임금과 한 신하와의 대화에 나온다.
영조는 조선 27대 임금 중 82세로 가장 오래 살았고, 52년간 왕좌를 지킨 임금이다. 그만큼 영조는 어느 왕보다 강력한 통치자였다. 붕당(朋黨)의 갈등을 탕평책으로 다스렸다. 하지만 세상의 어지러움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혼탁한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며 하문(下問)했다. 군위 출신의 성균관 유생 박광보(朴光輔'1724~?)가 답했다. "표정영직(表正影直)이올시다"고. 속뜻은 임금이 바르게 다스리면 백성들도 절로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혼탁한 세상은 임금이 바른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리라.
영조는 "그대의 솔직한 대답에 감동했다"며 선물을 하사했다. 또 '내가 왕이 된 지 4기(48년)나 됐으나/ 선비의 도리가 능하지 못하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로도 선비를 대하니/ 마음에 부끄러움이 앞서는구나/'''/ 지금 노령인 내가 그대의 뜻을 받아/ 성스러운 법과 어진 법도를/ 한번 크게 바로잡아 힘쓸 수 있는 것인가'는 글도 직접 지어 내렸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품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폭력에 찌들고 입은 욕으로 넘쳐나고 있다. 새로운 소통수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저질의 막말이 지배하고 패거리 문화가 횡행하고 있다. 공직사회는 비리, 부정부패로 악취를 풍기고 있다. 탐욕스런 1% 부자들은 나머지 99%의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선거를 눈앞에 둔 정치권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말 뒤집기를 능사로 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온갖 감언이설로 표를 구걸하고 있다. 후진사회로 몰아가는 소용돌이 바람이 거세다. 모두들 남만 탓한다. 자성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어제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 봉투 사건과 관련, '창랑자취'(滄浪自取'칭찬과 비난 모두 자기가 할 탓이란 뜻으로 중국 굴원의 시에 나옴)라며 사과했다. 그의 사과 역시 바르지 못한 모양이 빚어낸 곧지 못한 그림자의 하나일 뿐이다. 결국 지금 걱정하는 저품격 사회는 바르지 못했던 겉을 바꿔보려 노력하지 않은, 성균관 유생 같은 정신을 못 가진 우리들이 자초한 결과물이니 어쩌랴.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