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난에 늘 '영화감독'이라고 썼어요. 어릴 적 TV의 '명화극장'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으니까요.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영화를 볼라치면 꼭 제게 조언을 듣고 갔을 정도고요."
칠곡군 석적우체국에 근무하는 이호발(37) 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2편의 독립영화를 연출한 '당당한' 영화감독이다. 2002년 첫 메가폰을 잡아 개명문제를 다룬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상영시간 20분)와 2011년 대구시의 다양성영화제작지원금 600만원을 받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홍보한 '어떤 하늘'(상영시간 24분)이 그의 작품이다.
"제 이름 '호발'도 그러하듯 사람들은 의외로 이름 콤플렉스에 많이 시달립니다. 첫 편의 결론은 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어요. 장미는 장미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그 향기는 여전하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였죠. 두 번째 작품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영화로 여자 공무원과 영화감독의 이야기였죠."
두 편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주연 등 일인다역을 한 이 씨는 첫 영화에서 아들이 영화에 집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머니를 출연시켜 모자간 화해의 계기도 만들었다. 첫 작품은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제작지원상,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상영, KBS독립영화관에 초청되면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우체국을 배경으로 찍은 두 번째 작품은 시사회에서 우체국 내 상사와 직원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어 조만간 전국우체국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두 번째 작품에선 제가 근무하는 우체국의 현직 과장님과 국장님을 배우로 출연시켰는데 이분들이 감독의 말을 잘 따라줘 고마웠고 시사회 때 경북체신청장님께서는 덕담도 해주셨죠."
그의 영화연출 방식은 웃음을 지향하는 코믹물이면서도 극중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는 페이소스(pathos'극중 연기자에게 동경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극적인 표현)를 즐겨 사용한다.
이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고향인 성주군 벽진면에 온 천막극장에서 처음 영화란 걸 접한 이후 영화에 푹 빠졌다. 어머니 손을 잡고 '뒤돌아 보지 마라'란 제목의 영화를 보던 자리가 마침 영사기 근처였고, 관람하는 내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감독을 꿈꿔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꿈을 이루는 길은 순탄치 못했다. 어머니의 반대로 원하는 연극영화과로 진학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엔 '키노'란 잡지와 영화관련 책을 읽으며 영화감독의 꿈을 달랬다. 틈만 나면 용돈을 아껴 서울로 영화구경나들이를 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첫 취직이 됐으나 집에는 떨어졌다고 말한 뒤 부산의 네오영화아카데미에 등록했다. 6개월간 연출기법수업을 받고 2000년엔 김정구 감독의 단편 '샴하드 로맨스' 독립영화제작 현장에서 조명팀원으로 일하면서 '꼭 내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실이 2002년 작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였다.
독립영화는 보통 촬영기간이 일주일에서 15일 정도 걸리고 편집 후 완성까지 5,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요즘은 영화편집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이 분야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공이 쌓이면 제가 살면서 겪은 내용, 즉 우체국 이야기를 장편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는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평균 2편 이상의 영화를 본다. 2년에 한 편의 영화는 꼭 만들어야겠다는 그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다. 결혼도 미뤘다. 그래서 그는 근무하면서도 짬짬이 영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적어놓기를 잊지 않는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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