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미군이 점령하고 있던 이라크의 한 가정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수니파 반란군 전사인 30대 아들이 소총으로 아버지를 쏘아 죽인 것이다. 공군 출신으로 영어를 잘했던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도 근무했으며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게 꿈인 사람이었다. 친미 아니면 반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라크의 시대상황에서 젊은 아들은 반군 전사가 되어 친미주의자였던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눴던 것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SF영화 '스타워즈'는 부자간의 대립구도를 그려서 더 흥미를 끌었다. 악의 화신으로 은하계를 장악한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 베이더)에 대해 아들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맞서는 구도인 것이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우주의 평화를 지켜내지만, 가혹한 운명에 오열한다는 내용이다. 이념을 위해 천륜을 저버린 이 아들들의 영혼은 어떤 위안을 얻었을까.
러시아 문학가 투르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또한 아버지와 아들 세대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걸작이다. 어느 시대건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치와 옛 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이고, 아들은 이에 도전하는 이상주의자나 혁명주의자의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란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끊임없는 대립과 극복의 여정인지도 모른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대표작인 '데미안'에서"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이 구태를 깨지 않고는 새로운 살이 돋아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구태나 알의 껍질 또한 아버지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국에 대한 망언으로 악명이 높은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도지사와 자민당 간사장인 아들 이시하라 노부테루간의 이전투구는 더욱 가관이다. 여든을 앞둔 아버지와 50대 중반의 아들이 차기 총리의 가능성을 두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동양적 가정윤리의 최고 실천덕목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이 맺어 준 인연으로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천륜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도 심각한 세대갈등을 겪고 있다. 한'미 FTA, 무상 복지정책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밥상머리 설전이라도 벌일 형국이다. 사상과 이념 앞에서는 천륜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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