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국회의원과 △△△ 후보 가운데 누가 더 새누리당 후보로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새누리당의 총선 후보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가 예고된 20일 이후 대구의 한 선거구에서 나돌았던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문구다. 그런데 이 선거구에는 조사 문구에 등장한 두 사람만 출마한 게 아니었다. 이 선거구 신청자는 10명에 가까웠다. 나머지 후보자 측 관계자에게도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각 후보 진영은 발칵 뒤집혔다. 결과는 황당했다. △△△ 후보 측에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고 선관위에 신고까지 해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였다.
이와 관련, 이 조사에서 졸지에 탈락자가 돼 버린 한 후보 측 관계자는 "이런 내용으로 무작위로 수천 명의 유권자들에게 지지도를 묻게 하는 행위는 불공정 행위"라며 "마치 현역 의원과 특정 후보 두 사람만이 살아남고 다른 사람은 탈락했다는 인상을 부지불식간에 유권자들에게 심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사례2=대구에서 새누리당 공천 신청자가 가장 많은 선거구 가운데 한 곳에서는 최근 A, B, C, D, E, F, G 후보 가운데 비교적 인지도에서도 선두권에 드는 후보인 C, D 후보 등을 뺀 여론조사도 돌았다고 한다. C, D 후보 측의 조사결과 특정 후보 측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C, D 후보를 경쟁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 C, D 후보 측의 주장이다. 특정 후보와 약한 후보들을 열거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 명단에서 빠진 유력 후보들은 전화를 받은 유권자들에게 탈락자로 각인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두 경우 모두 현행 선거법상으로는 불법이 아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는 출마예상자들도 보도용이 아니면 해당 지역 선관위에 이틀 전까지 조사 내용을 '서면'으로 신고하면 여론조사를 벌일 수가 있다. 설문 내용은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다.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허위사실 등의 내용이나 명백하게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거나 당선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는 불'탈법적인 내용이 아니면 가능하다.
따라서 위의 경우처럼 설문 내용 자체만으로 문제가 없다면 선관위에서는 '통과'다. 대구 선관위 관계자도 23일 "명백한 불법적 내용이 아니라면 문제를 삼지 않는다"며 "후보를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선 조사도 설문 내용에 문제가 없으면 현행법으로는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이후 여러 후보는 자신에 대한 인지도 제고를 위해 홍보성 여론조사를 너나없이 벌여왔다. 하지만 최근 새누리당의 공천작업이 본격화되고 여론조사를 통한 현역 의원 교체지수와 후보 적합도 조사가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이 같은 '악성' 여론조사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실시하는 본 여론조사는 정작 실시되지도 않았는데 이를 빙자한 여론조사 역시 각 후보 진영에서 제약 없이 실시되는 바람에 대구경북 지역 내 곳곳에서 '누가 떨어졌다'거나 '누구와 누가 붙는다고 하더라'는 등의 미확인 루머까지 양산되고 있어 '여론조사 남용'에 대한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예비후보 진영의 기획담당자는 24일 "우리도 조사를 해 보았지만 응답률이 너무 낮아 신뢰를 하기 힘들다"며 "현행법으로 허용된 부분이긴 하지만 이를 악용하려는 후보들이 너무 많고 선관위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몇몇 여론조사의 경우는 돈봉투를 직접 돌리는 것보다 더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여론조사 남발과 악용에 대해 제약을 가하는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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