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념에 반하는 행위가 해결방법 시작점"

긍정적 이탈

제리 스터닌, 모니크 스터닌, 리처드 파스칼 지음/ 박홍경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없었다"는 불평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말 악순환의 덫에 빠진 조직이나 사회에서 그 고리를 끊고 빠져 나온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절망뿐일까?

이 책의 공저자인 고(故) 제리 스터닌은 세이브더칠드런 소속으로 전후 베트남 아이들의 영양실조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6개월이란 짧은 기간과 제로에 가까운 물적 지원으로 절대빈곤 속의 아이들을 구해야 했다. 그가 오기 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나선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먹이고, 떠나는' 식이었다. 그들이 떠나면 아이들은 다시 굶는 상황은 반복됐다.

이런 악순환을 인지한 스터닌은 과거 자신이 하버드에서 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던 당시 이론으로만 접했던 '긍정적 이탈' 개념을 이 문제 해결에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베트남 아이들을 구했다.

긍정적 이탈이란 특정 집단 안의 난제에 대해서 '분명 누군가는 이 문제를 극복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전문가가 직접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 있는 특별한 소수를 발굴하여 그들의 방식을 집단 내에 확산시킴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그런 문제'로 치부되며 공동체 스스로 해결을 회피한 문제들에 대해서 '원래부터 그런 것은 결코 없다'는 반기를 들고, '성공하는 변종'에 주목하는 토착적 해결법이다.

다시 전후 베트남 빈민마을로 돌아가 보자. 이곳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특히 가난한 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건강한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어머니는 고구마 싹, 게나 새우 등을 자신의 아이에게 먹였고, 아이들이 수시로 손을 씻도록 가르쳤으며, 조금씩 여러 번 식사를 하도록 하는 등 이 지역 다른 어른들의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의 식습관을 길러주었다. 이후 이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를 적용시켜 곧 영양실조 문제가 크게 개선됐다.

기적은 하루 두 번의 범람으로 침수되는, 그래서 버려진 브라질의 한 갯벌이서도 일어났다. 이 지역 평범한 여성 로사리오는 쓸 수 없다고 여겨진 이 땅의 기후주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특정 해에는 하루 두세 시간 정도만 물에 잠기고 쉽게 건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환금성 작물을 심어 수확에 성공했다. 이후 많은 주민들이 그녀처럼 이곳에 작물을 심어 판매하게 되었다. 지금 이 땅은 레몬, 고추 등의 작물이 자라면서 식물생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은 바로 '원래 그런 것'이라는 통념과 상식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식에 반하는 사람들의 일탈 행위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근본적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조직의 문제가 있고, 모두가 해결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이 문제에 대해서 놀랍게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소수의 조직 구성원(긍정적 이탈자)이 존재한다. 이들의 행위 양식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사고 조직 내에 확산되면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296쪽, 1만3천800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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