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서울로 가는 의사들

지역의 환자들만 서울 대형병원을 찾아 떠나는 줄 알았더니 의사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이들 모두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경북대병원이 사상 처음 인턴 대규모 미달 사태를 맞았다. 영남대병원이나 계명대 동산병원도 미달을 피하지 못했다. 이유는 분분하다. 의사 국가고시 합격자에 비해 인턴 정원이 훨씬 많다 보니 미달 사태는 당연히 예견됐다는 분석도 있고, 대구지역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 정원의 절반 이상을 타지 학생들이 채우다 보니 졸업하면 제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제 고향이라기보다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정부가 의사 인턴제를 2014년부터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결국 의대생들의 집단 반발 탓에 입법 예고가 무기한 연기됐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방 의대생들의 집단 반발도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인턴 과정이 서울 대형병원의 전공의가 되는 디딤돌인데 그것이 사라지면 이른바 '명문병원'으로 진출할 길이 막힌다는 것.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런 푸념을 했다. "이른바 명문병원을 찾아가면 스스로 유명 의사가 될 것으로 착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인턴뿐 아니라 전공의 지원 때도 마찬가지다. 소신을 갖고 정말 배울 만한 스승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저 병원 간판만 보고 무작정 좇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예비 의사들조차 병원 간판을 찾는데 환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암에 걸렸다면 무조건 서울 대형병원을 우선 찾는데도 지역 대학병원들은 '안타까움 속에 팔짱만 낀'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돈 되는' 환자들이 줄줄이 서울행 KTX를 타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당장 환자가 밀려들고 병실이 부족해 아우성칠 정도이니 팔짱만 끼고 지켜본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암병원장인 유방암 전문의 노동영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현재 암 치료 기술이 거의 표준화돼 있다. 이 때문에 보편화된 수술인데도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환자가 몰려 북적대는 큰 병원보다 편한 곳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제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치료가 가능한 병이다. 암 환자의 치료는 그 마음까지 어루만져야 효과적인데, 의사에게 환자가 너무 많으면 세심하게 진료하기가 힘들다."

쉽게 말해 암 치료는 '표준치료'가 정립돼 있는데 굳이 서울로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암의 종류, 병기, 환자 특성에 따라 그에 맞는 치료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말 그대로 표준치료라면 서울이든 대구든 비슷한 여건의 환자라면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결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잣대가 없다.

의사들조차 그나마 나와 있는 통계치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수술 건수가 많은 의사에게는 "밀려드는 환자 탓에 꼼꼼하게 수술을 못한다더라"고 비아냥거리고, 성공률이 높은 의사에겐 "쉬운 암만 골라서 수술한다"고 비난한다.

아무튼 한 대학병원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 표준치료가 정립돼 있다는데, 그래서 어딜 가나 같은 치료를 받는다는데, 왜 환자들은 서울로 몰릴까요?" 그 교수는 혀를 끌끌 차며 답했다. "김 기자, 서점에 가면 요리책이 그렇게 많은데도 집집마다 식당마다 음식맛이 왜 다른지 몰라서 묻습니까? 그게 바로 손맛이고, 정성 아닙니까. 김치찌개 하나를 끓여도 맛이 천차만별인데 사람의 병을 다루는 의술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표준치료는 최소한의 지침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동네 의사들이 제 식구 대하듯 환자를 대하면 '메디시티 대구'는 저절로 됩니다. 결국 마음이에요."

김수용/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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