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만사에는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든 워터케이트 사건만큼 이를 잘 보여주는 예도 없다.
닉슨은 임기 중 사임이라는 치욕을 안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존 시리카(1904~1992) 판사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대화 녹음테이프 제출을 명령해 닉슨 사임의 단초를 마련한 게 그다.
1904년 오늘 태어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기 전까지는 별볼일없는 경력의 지방법원 판사에 불과했다. 재판에서 법률적 실수가 잦아 능력도 의심받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워터게이트 건물이 그의 관할 구역인 컬럼비아 특별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사건 주범 전원에게 잠정적으로 종신형을 구형했다. 그들을 압박해 백악관이 배후세력임을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이에 주범 7명 중 5명은 유죄를 인정하고 백악관이 배후임을 토설했지만 사건 기획자 2명은 거래(배후 자백-형량 축소)를 거부했다. 그러자 시리카는 기획자 중 고든 리에게 20년형에 벌금 4만달러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이렇게 해서 붙은 별명이 '맥시멈 존'(최고형량 존)이다. 이런 유명세를 타고 1973년 타임스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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