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때때로 부모를 속상하게 한다. 마냥 천진하게 웃고 있다가도 한순간 돌변해서 투정을 부리며 내 뜻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얘가 그렇게 예쁘고 착하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기분이 든다. 어느덧 훌쩍 커 버린 것 같은 모습에 내심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먼저 돌아 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부모가 원하고 유도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를 윽박지르고 아이의 실수를 지나치게 나무라고 상처가 될 말을 내뱉는 자신을 깨닫고 순간 아차 싶었을 것이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느낌에 말문이 막히고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행동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받고 큰 사람일지라도 가슴 속에 생채기 하나 나 본적 없는 사람은 없다. 어린 나를 슬프게 했던 부모님의 말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나온 시간에 묻혀 흐릿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그 절망감만큼은 잊혀지지 않고 무의식 저 편에 남아 이따금씩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되면 절대로 내 아이에게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왜 아이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게 되는 걸까? 바로 두렵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따르지 않고 또 나와 다른 뜻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 눈에 훤히 보이는 정도(正道)를 아이가 보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화로 답답하게 꽉 눌린 속을 당장에라도 시원하게 터뜨리고 싶은 충동 때문에 우리는 가시돋친 말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잘못은 나무라고 실수는 포용하겠다는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 있는 것처럼 어리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아픔도 분명히 있다.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는 부모에게 차갑게 외면당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를 존중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어려워하게 된다. 탓하고 나무라고 소리지르는 대신,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시켰을 때에는 아이에게도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 나에게서 무한한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군소리 하나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로서, 연장자로서 더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낄지 모른다.
불완전한 부모와 불완전한 아이가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그 과정에서 우리의 의무는 '부모'라는 이름을 무책임하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 말해주자.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때로 우리가 서로를 속상하게 할 때가 있을지라도 부모는 너를 존중하며, 너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김 나 운 유아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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