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 전공의 이정원(33'여'대구예술대 강사) 씨는 지난해 10월 대구 남구 명덕네거리 근처에 개인연습실을 대여했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 연습실을 물색하다 이 일대가 문화예술인들이 많아 교류가 쉬운데다 연습하는 데 별로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연습하다 보면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오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다. 주위에 커피숍이나 음식점들도 많아 웬만한 것은 이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남구 대명동 일대(명덕네거리~경북여상~계대네거리)가 문화예술인들의 연습 공간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대구를 대표하는 '아트 벨트'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부터 음악, 미술, 무용 등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구역이었던 이 일대가 최근 개인 연습실이 활성화되고 커피숍 같은 교류의 장소가 하나 둘 생겨나면서 문화예술 활동의 메카로 급부상한 것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대구 문화예술인들의 60~70%가 이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건물마다 자리 잡은 연습실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중앙대로 49길. 이 길을 들어서자 최근 실용음악 열풍을 대변하듯 실용음악학원이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보인다. 건물 1층에는 커피숍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얼핏 눈에 띄지 않지만 이 길을 걷다 보면 건물마다 OO연습실이나 OO공연장 등의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뉴아트예술기획 김봉민 대표는 "이 부근에는 건물마다 크고 작은 연습실이 한둘은 자리하고 있다. 연습실이 없는 건물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북예술고등학교가 인근에 있어 과거에도 개인 레슨을 위한 연습실이 여럿 있었지만 과거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교수나 강사들이 사용하는 연습실 외에 대학생,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사용하는 개인 연습실이 많이 생겨났다. 김 대표는 "전반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대학생이나 고교생들이 학교 연습실 외에 이 일대에서 개인 연습실을 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지하 공간 위주로 연습실이 꾸며졌지만 지금은 층과는 상관없이 연습실이 꾸며졌다는 것. 인근 부동산에서는 연습실을 구하는 문의 전화가 자주 온다고 한다.
아트앤씨어터 박종덕 대표는 3년 전 건물을 인수해 지하는 소극장으로, 4층은 음악연습실로 꾸몄다. 박 대표는 "다른 지역은 지하 공간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 임대하는 데 애를 먹지만 이 일대는 지하 공간 대부분이 연습실이나 공연장으로 꾸며져 지하 공간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2층이나 3층을 연습실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건물 자체가 연습실과 공연장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된 곳도 적잖다. 건물 자체를 인수하거나 대여해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시 대여하는 것. 아트홀 하모니아는 지하는 공연장으로, 1층과 2층은 음악연습실로, 3층은 무용연습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 연습실을 사용하고 있는 아모르오페라 최상무 대표는 "최근 건물 자체를 문화 공간으로 대여하는 방식이 활발하게 진행된 점도 이 일대를 문화예술 구역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대구의 손꼽히는 여관이었던 일신장도 지금은 1층 일부만 여관으로 활용할 뿐 건물 대부분이 연습실로 꾸며져 있다. 5년 전 객실로 이용되던 방들을 리모델링해 지금은 100여 개의 연습실로 활용되고 있는 것. 이곳 연습실을 임대하는 월드예술문화원 서태교 대표는 "연습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클래식, 실용음악, 국악 등 다양하다. 고3 학생이 입시 준비를 하거나 대학생이 졸업 준비를 위해, 또는 유학 갔다 와서 자리 잡기 위해 연습실을 빌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서 대표는 "문화를 키우기 위한 공익사업의 하나로 대여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 일대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화예술거리로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인큐베이터 역할
명덕네거리~경북여상~계대네거리로 이어지는 대명동 일대가 아트 벨트로 형성되면서 이 일대는 자연스레 대구 문화예술을 생산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최상무 대표는 "문화예술인들이 이 일대에 몰려 있으면서 자연스레 정보 교류가 활발해지고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대구가 서울 다음으로 음악인이 많은데 이 일대에서 60~70%가 활동하고 있어 대구 클래식이나 오페라가 강해지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커피숍이나 술집, 음식점도 많이 생겨나 이 일대 유동 인구도 많이 늘었다. 박종덕 대표는 "예전에는 저녁만 되면 이 일대가 음산했는데 지금은 훨씬 번화해지고 역동적으로 변했다. 문화예술인들도 굳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특히 커피숍이 최근 2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손님 대부분도 문화예술인이라고 했다.
이 일대에서 각종 공연에 대한 홍보도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커피숍 등에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봉민 대표는 "웬만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일대를 찾아오니까 포스터를 붙이면 자연스럽게 홍보가 된다. 이 일대 커피숍이나 음식점 등도 포스터를 붙이는 데 호의적이다"고 했다.
음악 연습이 일상화되면서 소음에 대한 민원도 없다. 박 대표는 "다른 지역 같으면 음악 연주를 하면 시끄럽다고 난리지만 여기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연주를 해도 주위에서 뭐라 하는 곳이 없다"며 "그만큼 문화예술인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인들은 대구시나 남구청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 일대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아트 벨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부산만 하더라도 예고 근처에 이렇게 문화공간이 형성돼 있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 연습실이 규모가 협소한데다 열악하기 때문에 문제점도 일부 있다. 이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책이 이뤄진다면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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