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사람인 망우당 곽재우는 그를 지칭하는 자와 호가 있지만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더 알려진 당대의 호걸이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열흘째 되던 날 곽재우는 붉은 갑옷을 입고 은색 안장을 얹은 백마를 타고 나타나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의병을 호령하며 왜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홍의장군의 전설은 시작된다.
1592년 4월 1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20만 대군이 부산포에 상륙해 거침없이 북상하면서 조선의 국토와 백성을 유린했다. 나라와 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벼슬아치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조선의 온 산야는 백성들의 비명과 통곡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분연히 일어나 사재를 털고 의병부대를 조직한 이가 망우당 곽재우다. 곽재우는 현풍과 인접한 의령군 유곡에서 의주 목사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곽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호탕했고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보면 눈에 빛이 감돌아 마주 쳐다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곽재우는 일찍이 남명 조식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웠고, 그것이 인연이 돼 남명의 외손녀사위가 된다. 벼슬에 그다지 뜻이 없었지만 부모의 원에 따라 서른네 살 되던 해에 과거를 보아 차석으로 합격한다. 하지만 답안에 임금의 비위를 거스르는 대목이 있다는 이유로 며칠 뒤 합격이 취소된다.
부친은 이듬해 숨을 거두기 전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 아들을 불러 정3품 당상관 관복을 물려주며 "우리 가문을 이을 사람은 너뿐이다"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부친의 3년상을 치른 후에도 곽재우는 벼슬생각은 안중에 없이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시와 술과 낚시로 세월을 보낸다.
풍류의 세월을 보내던 곽재우가 불혹이 되던 해 임진왜란이 터졌다.
'의병은 싸울 뿐이지 뽐내지 않는다.'
곽재우가 처음 의병을 일으킨 1592년 4월 22일은 모리 데루모토가 이끄는 왜군 3만여 명이 김해, 창원을 점령하고 현풍으로 들어오던 날이었다. 의병을 모집하기에 앞서 그는 현풍의 본가로 달려가 조상의 사당에 고하고 선조들 산소 봉분을 평평하게 만들어 적병들이 범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다. 이어 어머니 허 씨를 비롯한 가족들을 데리고 의령으로 돌아와 깊은 산 속으로 피란시킨 후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곽재우는 우선 집에 데리고 있던 종 10여 명을 데리고 이불을 찢어 깃발을 만들고 붉은 관복을 입은 다음 '하늘에서 내린 붉은 군복의 장수'(天降紅衣大將軍)라고 스스로 일컫는다. 이때부터 홍의장군이 된 것이다. 이어 그는 마을 어귀 큰 정자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가산을 정리해 곳간을 열고 사람들에게 곡식을 마음대로 퍼가게 했다. 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옷으로 의병과 그 가족들에게 입혔다.
곽재우의 부인 김씨가 남편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제지하자 망우당은 칼을 빼 들고 "여편네가 사내대장부가 하는 일에 무슨 말이 많노. 저리 비키지 않으면 가만히 안둘끼구마…"하고 불호령을 내린다.
나이 40이 다되도록 벼슬을 마다하고 유유자적하던 곽재우의 행동이 갑자기 변하자 사람들이 "저 양반이 와 저라노?"하면서 처음엔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는다.
곽재우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동네가 떠나갈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난리가 났는데 감사니 목사니 현감이니 하는 놈들은 모두 줄행랑치고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거는 매한가지. 왜놈 한 놈이라도 우리 손으로 죽이고 우리도 죽읍시다. 같이 한번 싸워보자 그말이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 곽재우는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면서 평소 인색한 부자였던 매형 허언심의 집을 찾아간다. 매형을 설득하면 다소간의 하인들과 군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매형은 "무슨 해괴망측한 얘기를 꺼내 샀노!"하며 망우당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돌아앉았다. 망우당은 매형을 향해 다가가 눈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말을 잇는다.
"온 나라가 왜놈의 손아귀에 넘어가 쑥대밭이 된 마당에 돈이면 뭐하고 종놈들 어디다 쓸라고 하는교!"
곽재우는 함께 간 종들을 시켜 매형 부부와 외아들을 마당으로 끌어내 칼로 내리치려 하자 그제야 매형 부부는 사시나무 떨듯"알았다. 니가 시키는 대로 하마"하고 재산과 하인들을 내놓게 된다. 후에 매형 허언심은 전군향(典軍餉)이란 직함으로 곽재우의 의병부대 휘하 17장령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의병부대를 만든 지 보름 후 곽재우는 왜군의 척후선 3척이 남강을 거슬러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선봉장 심대승을 비롯해 날래고 힘깨나 쓰는 부하 10여 명을 인솔해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인 기강(岐江)으로 달려갔다. 강가 갈대밭에 궁수들을 매복시키고 강 속에는 통나무와 밧줄 등의 장애물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왜군의 배가 숨겨둔 암초에 걸려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틈을 타 공격명령을 내린다. 의병들의 쉴새 없는 화살 공격에 왜병들은 조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한 채 죽고 배도 침몰했다.
곽재우의 거듭되는 승전 소식을 듣자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속에 숨어 지내던 사내들이 몰려와 홍의장군 깃발 아래로 모였다. 10여 명으로 출발한 의병의 수는 수백 명으로 불고, 끝에는 2천 명에 이르는 대부대가 됐다.
곽재우의 여러 전투 가운데 정암진 전투가 가장 빛나는 승리로 손꼽힌다. 1592년 6월 함안을 점령한 왜군 2만 명은 의령을 공격하기 위해 정암진에서 도강작전을 시도했다.
정암진은 물이 워낙 깊은데다 그나마 얕은 곳은 진창이어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왜군은 사로잡은 조선 백성들을 동원해 마른 곳만 골라서 깃발을 꽂아 표시하게 하고 다음 날 해가 뜬 후 강을 건너려고 했다. 이런 사실을 훤히 알고 있던 곽재우는 밤새 의병들을 시켜 깃발을 모조리 뽑아 진창으로 옮겨 꽂게 하고, 미리 궁수들을 매복시켜 놓았다.
날이 밝자 왜병들이 강가로 꾸역꾸역 몰려나왔다. 깃발을 따라 강을 건너던 왜병들은 모두 진창에 빠져 허우적댔다. "쏴라! 한 놈도 놓치면 안 된다"는 곽재우의 명령에 화살이 비 오듯 날고 여기저기서 왜병들이 거꾸러지기 시작했다. 정암진 전투의 승리로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현풍지역에 주둔한 왜군 9번대의 휘하부대는 아전과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나르게 하고 수탈했다. 곽재우의 의병부대 4천여 명은 낙동강을 건너 현풍으로 진격했다. 곽재우는 먼저 선발대 수백 명을 뽑아 현풍성 밖에서 싸움을 걸도록 했지만 왜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나오질 않았다. 곽재우는 작전을 바꿔 인근의 비파산성과 현풍성 뒷산에 의병을 배치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비파산의 의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횃불을 올렸다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뒤이어 현풍성 뒷산의 의병들이 일제히 횃불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울리다 금세 잠잠해진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성문에 다가가 불빛을 성안에 비추며 외친다.
"홍의장군 여기 있다. 내일 성을 함락시키고 너희들을 모두 죽일 것이니 후회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왜군은 이날 밤 현풍성을 버리고 창녕 쪽으로 퇴각했다. 곽재우의 심리전에 말려든 것이다. 곽재우는 연달아 의령, 현풍, 창녕, 영산의 의병을 규합해 이곳 지역에 주둔한 왜군들을 물리치면서 왜군의 점령하에 있던 경상좌도 지역을 수복했다. 이로써 경상 좌'우도와 부산에서 한양에 이르는 왜군의 통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전란이 끝난 후 임금이 내리는 여러 벼슬을 사양했다는 이유로 전남 영암에서 2년간 귀양살이를 한 곽재우는 51세(1602년)때 유배에서 풀려난 후 비슬산에 들어가 곡기를 끊고 솔잎으로 연명한다.
이후 일체의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곽재우는 다섯 아들에게도 모두 벼슬을 하지 말도록 타이르며 시를 읊는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한가로이 구름산에 누웠으니/ 근심을 잊어서 몸은 절로 가볍네/ 예부터 신선이란 없다고들 하건만/ 오로지 마음으로 깨우친 순간 신선이 되는구나-
곽재우는 말년에는 영산현 낙동강변에 망우정을 짓고 거처하다 1617년(광해군 9년) 66세 되던 봄에 창증으로 위독해져 세상을 떠난다. 이후 예연서원(禮淵書院)이라는 사액이 내려졌고, 1709년(숙종 35년)에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됐다.
달성'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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