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밑자락 허름한 국수집에서
종업원이 합석을 시킨 자리가 하필
베트남인 부녀와 한국인 사위가 앉은 자리다
점심때도 한참 지난 오후 세 시경
얼굴에 개기름이 잘잘 흐르는 그 베트남 부녀나
장인하고도 별반 나이 차가 없어 보이는 한국인 사위나
짝 잃은 노새처럼 산성이나 찾아 든 나나
한결같이 기다리는 것은 뜨신 국수 한 그릇
모든 입맛은 시장기에서 만나지는가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오듯 허연 김을 올린 국수가 왕림하니
바다처럼 출렁거리는 그 국숫물을
들판의 풀처럼 엎드린 그 면발을
몸속에 풀어놓느라
일제히 후루룩거리는 소리
문득 나는 이 쪼그만 베트남 부녀를 따라
베트남의 어느 작은 골목을 서성거리고
거기서 아오자이를 입은 소녀들의
후두둑 웃음 듣는 소리를 들은 듯도 해
모든 언어는 의성어에서 만나진다는 말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
베트남 부녀가 방귀 터지는 말로 사뿐 웃는다
아아, 저 말
쪼그라든 한국인 사위까지 일순 활짝 펼치는
저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따라 웃을 수도 없어
외따로이 홀로 고개 숙인 나는
후루룩, 소리만 일관성 있게 흘리고 있을 뿐
스쳐가는 삶의 풍경을 따스한 시선으로 전해주는 문성해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어느 국수집에서 만난 풍경을 중계하고 있네요. 베트남에도 국수가 있다지만 한국에서 국수를 보니 반가워서였을까요. 베트남 부녀가 즐거워하는 말에 우리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됩니다. 멀리서 배필을 찾아 가정을 이룬 이들에게 이런 기쁨의 말들이 매일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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