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교육체험 수기 당선 교사들

받는 사랑만큼 자라는 아이들…함께 가꾸는 '내일의 꿈'

사진=
사진='이런 선생님, 어때요?' 경북도교육청의 제2회 교육현장 체험 수기 공모에서 '반가운 손님'을 출품, 대상을 받은 안강제일초교 안희옥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3반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채정민기자
안희옥 교사 장장호 교사 김현승 교사
안희옥 교사 장장호 교사 김현승 교사

학생 사이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면 제각각 학생 인권 존중과 교권 보호를 외치고, 다른 의견에는 귀를 닫는다. 어느새 학생과 교사 간 끈끈한 정(情)은 저만치 뒷전으로 밀려버린 모양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 사랑을 실천해 온 교사들이 있다. 경상북도교육청이 지난해에 이어 교육 현장 체험 수기를 공모한 결과 대상을 받은 안희옥(안강제일초교) 교사와 금상을 수상한 장창호(울진초교)'김현승(영양고) 교사가 그들이다. 제31회 스승의 날을 맞아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교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교감하는 게 좋은지 돌이켜보게 한다.

◆"30여 년 전 가르친 학생, 감사의 방문"…안희옥 교사

33년째 교단에 서고 있는 안강제일초교 안희옥(53'여) 교사는 지난해 4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굵은 목소리로 '안희옥 선생님이십니까'라고 물은 남자는 '김영철'(가명'41)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댔다. 순간 안 교사는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30여 년 전 안강초교 근무 때 마음으로 보듬었던 제자였기 때문.

한 달여 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포항 바닷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안 교사는 영철 씨를 만났다. 안 교사의 기억 속 꼬마는 키가 180㎝를 훌쩍 넘는 신사로 자라 있었다. 서울에서 한 회사의 중견 간부로 있다는 영철 씨와 손을 맞잡고 근황부터 옛 추억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반나절이 금세 지나갔다.

"잊지 않고 절 찾아주다니 정말 고맙죠. 영철이가 초교 5학년 때 담임을 맡았는데 이듬해 제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어요. 그런데도 영철이는 제가 변한 게 없어 금방 알아봤대요. 절 잊은 적은 없지만 성공해서 찾아뵙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 그동안 연락을 안 했다더군요."

안 교사에게 영철 씨는 잊을 수 없는 제자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신참 교사 시절 만난 영철 씨는 똑똑할 뿐 아니라 매사 성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어두웠고 말수도 유독 적었다. 어머니 홀로 맏이인 영철 씨를 비롯해 5남매를 키우는 가정형편 속에서도 영철 씨가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일부 학생들이 영철 씨를 시샘해 어울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 안 교사 자신도 어린 시절 같은 이유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 어떻게든 돕고 싶었지만 영철 씨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새 학기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가정방문을 하면서 안 교사는 영철 씨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당시 영철 씨네 단칸방 문을 열었을 때 영철 씨와 동생들만 앉아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안 교사가 울음보를 터뜨린 갓난 막내를 안아 달래고 있자니 영철 씨 어머니가 공장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머니가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붙잡는 통에 함께 숟가락을 들었어요. 동그란 양철 밥상에 된장찌개, 김치, 달걀부침이 전부였지만 따뜻한 정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스스럼없이 함께 먹는 모습에 영철이 눈이 동그래지더군요. 이후 제게 먼저 다가오게 됐죠."

안 교사는 쉬는 시간이면 영철 씨의 손을 잡고 함께 운동장을 산책하고, 방과후엔 교실에 함께 남아 책을 읽었다. 환경미화, 토론 수업 등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주자 영철 씨와 다른 아이들 사이의 벽도 허물어졌다. 어느새 영철 씨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자주 피게 됐다.

영철 씨와의 추억을 안 교사는 '반가운 손님'이라는 제목의 수기에 담았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당시와 지금 안 교사가 꿈꾸는 교사상은 변함이 없다. 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칭찬을 많이 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지금 2학년을 가르치는데 매일 아침 아이들이 절 보면 서로 저와 이야기하려고 달려들어요. 힘드냐고요? 아닙니다. 아이들과 부대낄 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합니다."

◆"매일 아침 제자 집 찾아가 함께 등교" …장창호 교사

누구나 새내기 시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기 마련. 울진초교 장창호(35) 교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금락초교(경산시 하양읍)에 첫 부임, 2년차 교사이던 2004년 6학년을 담당하면서 만난 김경화 양과의 사연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당시 경화 양은 학교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결석이 잦은 아이였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 아래 초교 4, 1학년인 여동생 둘과 유치원생인 남동생까지 있어 가정형편도 어려웠다. 학교에서 말문을 닫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경화 양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에선 동생들을 잘 챙기는 맏이더군요. 하지만 학교에선 늘 혼자였죠. 학교에 수시로 나오지 않는데 제가 집에 전화해야 겨우 등교하곤 했어요.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의욕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장 교사는 경화 양의 등굣길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경화 양의 집 앞에서 '경화야! 학교 가자'를 외쳤다. 마침 장 교사가 사는 곳이 경화 양의 집과 가까웠고 두 집 모두 학교 인근이어서 함께 걸어서 등교했다. 덩달아 경화 양의 여동생들도 따라나섰다. 졸지에 총각 교사가 딸 셋을 데리고 출근하는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된 셈. 3월 중순부터 두 달여 동안 그렇게 등굣길을 함께하자 경화 양도 조금씩 장 교사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경화가 직접 얘기하진 않았지만 어느새 매일 아침 절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느 날 '이제 저 데리러 안 오셔도 학교에 잘 나갈 거예요'라고 했을 때 마음이 놓이더군요. 물론 살짝 섭섭하기도 했지만요."

장 교사는 또 학급 여학생들에게 경화 양을 챙겨주라고 부탁했다. 물론 '왜 경화만 예뻐하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겐 '조금 뒤처지고 숨이 가쁜 친구들은 도와줘야 하는 것'이라고 타일렀다. 틈이 날 때마다 학교 인근에 자리한 대구대 캠퍼스로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나들이도 다녔다. 행여 도시락 반찬이 서로 차이나면 위화감을 느끼게 될까 봐 김치를 비롯한 반찬 한두 가지만 싸오도록 엄포 아닌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경화 양은 아이들 속으로 서서히 녹아들었다.

'경화야! 학교 가자'는 수기를 쓴 장 교사는 최근 경화 양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입을 통해 중'고교 시절을 무난히 보냈다고 하니 지금도 잘 지낼 거라고 믿는다. 교단에 첫발을 디디면서 '아이들에게 어느날 문득 한 번쯤 생각나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경화 양이 가끔 자신을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당시 아이들과 함께 편지를 쓴 뒤 '꿈단지'에 담아 15년 뒤인 2019년 1월 1일 오후 1시 열어보자고 했습니다. 아직 그 꿈단지는 제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고요. 몇 년 뒤 근사한 모습의 경화가 제 앞에 나타나 함께 꿈단지를 열게 될 거라 믿어요."

◆"프로게이머 꿈꾼 형제들 도와 게임대회 출전"…김현승 교사

교사가 된 첫해인 2010년, 김현승(30) 교사는 영양고에서 고3 담임을 맡았다. 경험이 일천한데 진학 지도까지 해야 하는 터라 부담이 됐지만 이내 더 큰 숙제가 생겼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책상에만 앉아 있을 뿐 공부와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고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김종현(가명) 군 때문. 김 교사가 말을 걸어도 침묵을 지키거나 '예' '아니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게 전부였다. 더구나 옆 반에 있는 종현이의 쌍둥이 동생 종수(가명) 또한 형과 다를 바 없었다.

"학기 초 개별 상담을 할 때 종현이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저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의 철없는 얘기로 들렸어요. 게임은 취미로 하고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만큼 어떻게든 성적을 올릴 생각부터 하라고 다그쳤죠."

그날 종례시간, 김 교사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자습에 모두 참여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아이들이 "종현이는 서울에서 열리는 게임대회에 출전해야 한다"며 예외로 둘 것을 건의한 것이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실력을 갖췄는데 아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교사는 바로 종현이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동생과 함께 교무실로 불렀다. 차근차근 물어본 끝에 '카트라이더' 게임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형제가 유명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게임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죠. 하지만 좋아하리란 예상과 달리 둘은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순간 경제적 형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했는데도 잠시 놀랄 뿐, 대답은 마찬가지였어요."

잠시 고민하던 김 교사는 또 다른 제안을 덧붙였다. 시골에서 자라 영양 밖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라 낯선 곳에 가기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이 서울까지 함께 가면 출전해보겠느냐고 물은 것. 그제야 형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 9주 동안 매주 일요일 김 교사는 차를 몰아 형제와 서울과 영양을 오르내렸다. 물론 식비 등 모든 비용은 김 교사의 몫이었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게임을 중계하는 케이블TV에 나온 형제의 모습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이후 형제의 학교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 날이 많아졌고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어울렸다. 고교 졸업과 함께 이들은 대구보건대하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게임도 좋지만 안정된 직업이 필요할 거라는 김 교사의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형제와의 인연은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었다. 김 교사는 종현이의 동생 종수의 담임이던 김근우(27'여) 교사와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의 아내는 종현이 뿐 아니라 자신의 제자까지 챙겨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게임 대회를 위해 상경할 때 한두 차례 동행했고, 그러다 부부의 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TV로 형제가 게임을 하는 화면을 아내와 함께 보면서 웃곤 합니다. 아이들이 대회 우승 상금을 타면 제 차에 기름 100만원어치를 넣어주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우리 부부가 선물을 줘야 한다고. 게다가 '알을 깨어주는 마음으로'라는 수기로 상도 받게 됐으니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제가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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